
※ 사진 설명: 10월 23일에 파업한 다음 “4조2교대! 인력충원! 처우개선! 인천공항지역지부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는 노동자들.(사진 출처_노동과 세계)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서 노동자들은 원청과 직접 교섭하고,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투쟁을 통해 노동조건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시행 7개월이 지난 지금, 현실은 이런 기대와 거리가 멀다. 정부는 기존의 교섭 창구 단일화 절차를 원·하청 교섭에도 적용하는 시행령과 원청의 사용자성을 좁게 해석하는 지침으로 교섭의 문턱을 높였다. 어렵게 원청과 교섭을 시작하더라도 교섭 의제가 제한돼 실질적인 노동조건 개선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노동자들은 임금과 노동조건을 놓고 교섭하기도 전에 누가 사용자인지, 누가 교섭대표인지, 무엇을 교섭할 수 있는지부터 다퉈야 한다.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은 법이 보장한 교섭권조차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노동위원회가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했는데도 한화오션은 법적 절차를 통해 교섭을 지연시켰다. 결국 하청노동자 6명이 고공농성에 돌입하고 나서야 원청과의 첫 교섭이 시작됐다.
인천공항 자회사 노동자들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원청인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산업안전 분야의 사용자성만 인정하고, 인력 충원과 교대제 개선 등은 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안전에 대해서는 교섭하면서 정작 안전을 위협하는 노동조건은 교섭할 수 없다면, 도대체 무엇을 바꿀 수 있겠는가.
더 큰 문제는 교섭이 결렬됐을 때 원청을 상대로 쟁의행위를 할 수 있는지조차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교섭할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쟁의권 행사에는 또 다른 법적 장벽을 설치한다.
이런 모순은 단지 시행령이나 지침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자본의 권한은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노동자들이 자기 삶을 바꾸려 하면 정부와 자본의 허락을 받게 만들려는 사회 자체가 문제다. 노동자들이 오랜 투쟁으로 법과 제도를 일부 바꿔냈다고 해서 자본과 노동자 사이의 힘 관계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생산과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권한을 자본이 쥐고 있는 한, 노동자의 권리는 법과 제도 안에서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터를 넘어 사회에서도 주인이 되기 위해 싸워야 하는 이유다.
월간 정치신문 <노동자투쟁>(서울) 83호, 2026년 10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