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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사회
 

1925~27년 중국혁명 100주년 기념 기획 ① 1925년 중국 노동자 계급,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다


  • 2025-06-26
  • 15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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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설명: 5.30 학살사건 후 전국 각지서 항의 시위[출처_CGTN(중국 글로벌 텔레비젼 네트워크)

 

“우리에게 혁명 말고 다른 길이 있는가? 그렇기에 우리는 혁명으로 나아갈 것이다!”

 

1919년~1924년, 거대한 중국 대륙에서 노동자계급이 그 육중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투쟁 초기에는 주로 반(反)제국주의 학생시위에 노동자들이 호응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후 광저우, 상하이 등의 산업노동자들, 홍콩 선원들 등이 스스로의 요구를 바탕으로 대규모 파업을 벌이며 노동자 계급은 막강한 사회 세력으로 성장해 나갔다. 


1925년 5월 노동절, 전국의 노동자‧농민 대표들과 수천 명의 광저우 노동자는 중국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노동자‧농민 연대시위를 벌였다. 몇 주 뒤에는 사관생도들과 무장한 노동자들이 광저우 군벌과 전투를 벌여 그들을 쫓아냈다. 상하이, 베이징 등에서는 40만 노동자가 파업에 참여했다. 영국군, 프랑스군이 노동자 수십 명을 살해했지만 중국 노동자들은 거대한 분노와 총파업으로 응답했다. 제국주의 국가의 관료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광저우에서는 사실상 노동자들이 도시를 규찰하고 운영했다. 착취자와 그에 기생하는 관료들 없이도 노동자계급이 한 사회를 스스로 운영할 역량이 있다는 점이 증명됐다.


제국주의에 맞서 결연히 투쟁한 노동자들과 달리 민족 자본가들은 오로지 자신들만의 협소한 이해관계를 지키려고 했다. 국민당은 중국 자본가계급을 대표하는 정당이었는데, 1925년 혁명으로 광저우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나자 1926년 3월 쿠데타를 일으켜 파업위원회를 무장해제하고 공산당원들을 체포했다. 이후에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사독재를 수립했다. 기세등등해진 자본가들은 깡패들을 동원해 50명의 노동자를 살해했다. 자본가계급은 노동대중의 운동을 활용해 권력을 잡자마자 대중을 공격하고 ‘자본가 독재’를 수립하는 방안에 골몰했고, 그 방안을 곧바로 실행했던 것이다. 


반면 스탈린주의 코민테른과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당이 ‘혁명적 세력’이라는 배신적 환상을 유포하고 국민당에 복종하라고 명령하며 대중의 의식을 마비시켰다. 준비되지 않은 노동자 계급은 당연히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같은 자본가계급의 왼쪽 분파에 대한 환상은 오늘날까지도 널리 유포돼있다. 하지만 중국 혁명의 역사는 모든 자본가계급이 착취자이며, 노동자들에게 적대적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오로지 자신들의 역량을 굳게 믿고 모든 자본가계급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월간 정치신문 <노동자투쟁>(서울) 65호, 2025년 4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