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세계 주요 국가들과 거대 기업의 대표들이 모여 인공지능(AI)기술 규제에 관한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AI가 초래할 파국적 위험을 막자는 것이 대외적인 명분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국 AI 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규제를 주도하고 타국 AI 산업에 진입장벽을 만들어 AI 패권을 잡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략적 기술에 대한 국제 협약의 모습이 어떤지 이미 알고 있다.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은 핵무기 확산을 방지하고 감축한다는 명분으로 만들었으나 실제로는 핵무기를 보유한 강대국들이 핵무기를 독점하도록 보장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10년 이후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 시설을 여러 차례 공격한 것도 핵무기 비확산을 명분으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이스라엘은 미국의 묵인 아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2003년 미국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며 이라크를 침공했지만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술 규제’란 제국주의 강대국이 자국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
다른 과학기술과 마찬가지로 AI기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 기술을 사용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방사능을 통해 암을 치료하고 에너지를 생산할 것인지 아니면 핵무기를 만들 것인지를 현재 과학 기술의 통제권을 쥐고 있는 자본가와 그의 정치인이 결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주요 언론에서 말하는 인류에 대한 AI의 위협(대량실업, 금융혼란 등)은 사실은 AI를 시장 법칙과 이윤 경쟁이라는 자본주의 체제의 틀 안에서 사용할 때 벌어지는 문제다. 그러므로 인류에게 필요한 건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주도하는 ‘기술 규제’가 아니다. AI가 인류를 위한 기술로 발전하는 걸 가로막는 낡아빠진 자본주의 체제를 끝장내야 한다.
월간 정치신문 <노동자투쟁>(서울) 48호, 2023년 11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