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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사회
 

광주민중항쟁 – 해방된 세상의 선구자


  • 2025-06-26
  • 1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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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설명: 계엄군과 대치 중인 광주의 노동자민중(출처_5.18 기념재단)

 

노동자 계급은 광주민중항쟁에서 무엇을 기억하고 계승해야 하는가?


광주민중항쟁은 70년대 내내 수많은 학생‧노동자‧민중이 군부독재에 맞서 피 흘리며 싸워온 투쟁의 정점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었다.


박정희 사망 후 전두환 중심의 신군부는 쿠데타로 군부 권력을 장악한 뒤, 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해 아래로부터의 민주화 열기를 총칼로 짓밟으려 했다. 당시 광주에서 반독재 투쟁을 이끌던 학생지도부와 주요 운동권 인사들은 계엄 당국에 체포됐거나 피신한 상태였다. 그러나 명확한 지도부가 없는 상황에서도 광주 민중은 계엄군에 학살당하기만 하지 않았다. 곤봉과 군홧발로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계엄군에 맞서 조직적인 저항에 나섰고, 이후 공수부대가 집단 발포와 잔혹한 살육을 벌이자 자신과 가족, 이웃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었다. 그리고 결국 계엄군을 몰아내고 ‘해방 광주’를 쟁취했다.


광주 민중이 명확한 지도부 없이도 계엄군을 몰아내고 해방된 광주를 쟁취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랜 반독재‧생존권 투쟁을 통해 쌓아온 민중의 역량 덕분이었다. 70년대에 벌어졌던 여러 투쟁에서 학생뿐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민중이 독재 정권에 대한 비판의식과 조직적인 시위 방식을 익혀왔다. 공수대원들의 폭력에 맞서는 과정에선 이름 모를 현장 지도자들이 탄생했다. 윤상원을 중심으로 들불야학에서 활동하던 노동운동가들도 남아 <투사회보>를 배포하며 상황을 알리고 투쟁 지침을 전파했다. 이런 혁명적 지식인들과,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형성된 시민군은 분노한 광주 민중의 지지를 받아 타협적인 ‘5.18 수습대책위’를 몰아내고, 항쟁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도부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은 해방된 광주의 치안과 행정, 외부 연락을 조직적으로 담당하며 짧은 시간이었지만 노동자민중의 자치 권력을 실현했다. ‘해방 광주’는 노동자민중이 무기를 들어 권력자를 몰아내고 사회를 운영할 수 있음을 실제로 보여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이 사회의 지배자들이 가장 숨기고 싶어 하는 진실이다.


노동자민중이 해방되는 세상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웠던 이들은 27일 도청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최후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들이 목숨 바쳐 써내려간 광주항쟁의 역사는 ‘해방된 세상’의 선구자로서 노동자 계급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를 철폐하고자 하는 이들은 광주항쟁이 남긴 정치적 자산을 바탕으로 혁명운동의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


월간 정치신문 <노동자투쟁(서울)> 66호, 2025년 5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