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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사회
 

조선공산당 창당 100주년 - 조선독립을 목적하고, 공산주의를 희망하다


  • 2025-06-26
  • 1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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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김재봉 어록비(출처_오마이뉴스)


"朝鮮獨立(조선독립)을 目的(목적)하고.."


안동시 풍산읍에 위치한 김재봉 어록비다. 그런데 그의 어록은 중간에서 잘렸다. 어록비의 문구는 김재봉이 1922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코민테른(국제공산당)의 극동인민대표회의에 참여할 당시, 참석 목적과 희망으로 제출한 문구 "조선독립을 목적하고, 공산주의를 희망함"에서 따왔다.


그의 말은 잘렸지만, 김재봉이 공산주의자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1925년 4월 17일 1차 조선공산당 창립대회를 주도하고, 이튿날 책임비서로 선출됐다. 그해 11월, 일제 경찰의 대대적인 검거로 1차 조선공산당이 와해됐지만, 그 후에도 1920년대에 최소 세 차례에 걸쳐 조선공산당은 다시 결성되고 검거되기를 반복했다. 1930년대에는 이재유나 박헌영 등이 조선공산당 재건위원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일제의 전시 총동원이 시작되며 사실상 모든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들이 변절하거나 후퇴한 이 시기에 유일하게 운동을 전개한 것은 공산주의 활동가들이었다. 일제강점기 공산주의자들의 꺾이지 않는 투쟁은 식민지 조선 민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해방 직후 여론조사에서는 75% 이상의 민중이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 체제를 희망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조선공산당에도 한계가 없지는 않았다. 당시 세계의 모든 공산당이 그랬듯, 조선공산당 역시 소련 스탈린 정권에 사실상 종속돼 있었다. 그리고 지식인 중심 조직에 머물러 노동자 계급과 깊이 결합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몇몇 한계가 있다고 해서 조선공산당의 활동 전체를 깎아내릴 수는 없다. 누가 뭐라 해도 당대의 민중이 평가했듯,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 해방만이 아니라 독립운동에서도 최선두에 섰다. 게다가 여성해방을 위해 싸운 근우회나 백정의 신분차별 철폐를 위해 설립된 형평사와 연대하는 등 모든 억압받는 이들의 선두에서 싸웠다. 비록 일제로부터는 해방됐지만, 노동자해방‧여성해방은커녕 혁명적 노동자당도 갖지 못한 오늘날의 우리는, 100년 전 선조들의 가열찬 투쟁 정신을 다시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


월간 정치신문 <노동자투쟁>(서울) 65호, 2025년 4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