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진 설명: 4월 25일 진주에서 열린 화물연대 총력 결의대회(출처_노동자투쟁 서울)
자본과 국가권력이 서광석 열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후 화물연대 노동자들은 투쟁을 강화했다. 그러자 BGF로지스는 이제서야 교섭장에 나왔다. 원청인 BGF리테일, 민주당 의원, 국토부 관료, 그리고 진주노동지청장까지 교섭장에 얼굴을 비춰 입회인 노릇을 했다. 그런데 22일 교섭한 바로 다음날인 23일, BGF로지스는 “BGF리테일은 실질적 지배력과 사용자성 근거가 없다”고 발뺌하는 한편 노조에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교섭은 ‘교섭’이 아니라 ‘긴급 협의’일 뿐이고, 화물연대는 ‘교섭’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그 와중에 여러 언론은 서광석 열사의 사망 직후부터 ‘노란봉투법 후폭풍’, ‘차를 화물연대가 막아섰기 때문에 사고가 난 것’ 등의 궤변을 늘어놓더니, 이제는 ‘파업이 길어져 CU 편의점들이 아우성을 친다’며 편의점주들의 대변자를 자처한다. 이재용이 누구와 셀카를 찍는지 연일 보도하느라 정신없던 조중동이 언제부터 편의점주들의 생활을 신경 썼을까? 대기업의 편을 들고 노동자들을 펜대로 공격하기 위해서라면 그들에게 못할 일은 없다. 가맹점주연합회 회장의 ‘울먹임’에 대해 진부하게 들먹이다가, “공권력 투입을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경찰은 ... 매뉴얼식 대응만을 반복하고 있다”는 BGF로지스의 입장문을 덧붙이며 은근슬쩍 폭력 진압을 선동한다. 노동자의 목숨은 확실히 그들의 고려 사항이 아니다.
고용노동부는 사고 직후에 화물연대가 ‘소상공인, 개인사업자’에 해당한다며 명백히 자본가의 편을 들었다. 그러더니 며칠 뒤 김영훈 장관은 화물연대가 ‘실질적인(?) 노조’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영훈은 자본가 입장만이 아니라 노동자 입장도 들어주는 척하고 있지만, 어쨌든 기존 입장을 철회한 것은 분명히 아니다.
걸핏하면 ‘노동 존중’을 언급하고, ‘노동자들이 단결해 노동운동을 해야’한다던 이재명은 뒷짐을 지고 말이 없다. 뻔뻔한 회피다. 이것이야말로 존중을 요구하며 단결권을 행사한 정당한 투쟁이 아닌가? 그런데 이재명 정부의 경찰은 파업 현장에서 자본가들을 도와 노동자들을 짓밟았다. 과연 이재명식 ‘존중’이다. 노동자들에겐 말로만 ‘존중’한다고 립서비스를 하거나 아주 작은 떡고물만 던져주고, 실제론 자본가들과 협력하며 노동자들을 향해 살인적 주먹까지 휘두르는 것, 이것이 이재명식 ‘실용주의’의 계급적 실체다.
보라, 이것이 자본주의다. 지배자들과 그 부역자들 모두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다. 자본가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법원이 노동자를 처벌해주길 간구한다. 공권력은 자본가의 용역 깡패가 돼 자본가들이 ‘나아갈 길’을 터준다. 언론은 논점을 흐리며 폭력을 선동한다. 정치인과 관료들은 사람이 죽고 나서야 ‘잘 해결되도록 힘쓰겠다’며 중재자를 자처한다. 마치 삶과 죽음의 문제가 되돌릴 수 있는 종류의 문제라도 되는 양!
이런 자본주의 야만과 비겁함에 맞서 노동자들도 자기 역할을 해야 한다. 자본의 전방위적 공격에 흔들리지 말고 맞서야 한다. 자본가 계급과 그 거간꾼들을 신뢰하지 않으며 오로지 우리 노동자 계급의 힘과 의지를 믿어야 한다.
[제기될 수 있는 질문에 대한 응답]
Q. 대체운송은 물류 업체의 정당한 권리가 아닌가? 그것을 막으려 든 것이 잘못 아닌가?
A. 대체운송이라는 말 대신, 불법적 대체인력 투입이라는 표현을 쓰자.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것은 바로 파업을 무력화하기 위해서다.
CU 자본 말고도 모든 자본가는 노동자들이 단결권을 행사할 때 그것을 무력화할 수 있는 대체인력 투입을 염원한다. 역사적인 노동자 투쟁의 성과로 노동조합법에 그것이 금지돼 있긴 하지만, 자본가들은 그 법조항의 구멍을 찾으려고 온갖 애를 써왔다. 과거 철도노조 파업 때마다 정부가 군 인력을 투입했던 것이 그 예시다. 이런 식으로 자본가들과 국가는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파괴하기 위해 공작을 벌여왔다. 이런 공격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권리’조차도 아니다.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노동자들이 아니라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다르다고 반론을 제기할 수있을까? BGF리테일과 로지스는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고정급과 수당 등 노동처우를 결정하고 업무를 지휘·감독한다. 노동자들은 BGF리테일이 만든 애플리케이션에 업무기록을 하고 BGF로지스에 운송 상황과 화물차의 차내 온도를 실시간 보고한다. 세상에 이런 ‘개인사업’도 있는가? 김영훈 노동부나 믿을 말이다.
BGF리테일·로지스는 화물연대 노동자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은 정부와 법체계의 의도된 허점을 이용해 이런 불법적이고 부당한 대체근로를 자행하고 있을 뿐이다. 자본가의 대체인력 투입에 맞서 노동자들이 실력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대체수송 차량을 막지 말라는 것은 파업을 아예 하지 말라는 이야기고, 파업하지 말라는 것은 평생 자본가의 지시와 저임금·고강도 노동에 순응하는 고분고분한 노예로 살라는 것이다.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저항에 나선 것은 노동자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다. 자본가의 파업 파괴를 지지할 것인가, 노동자의 존엄을 위한 투쟁을 지지할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Q. 정부와 경찰은 왜 사용자의 편에서 노동자를 탄압했나? 언론들이 이렇게 화물연대 파업에 경기를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A. 화물연대는 지난 2022년에 안전운임제 지속과 품목 확대를 요구하며 총파업을 벌인 바 있다. 그때에도 정부는 대체인력 투입을 막기 위한 노동자들의 실력 행사를 ‘범죄’로 규정하고 업무개시명령이라는 막가파 결정을 내렸다. 국민의힘은 ‘강성 귀족노조의 태업’이자 ‘악의 사슬’이라며 노동자들을 비난했고, 언론은 ‘억대 연봉’이라는 가짜 뉴스와 ‘불법 정치투쟁’을 운운하며 몰아세웠다. 민주당은 노조의 동의 없이 ‘안전운임제 품목 확대’를 빼고 정부·여당의 단순 연장안에 합의하며 노동자들을 손쉽게 배신했다.
이처럼 화물연대 파업이 벌어졌다 하면 정부, 언론, 정치인 할 것 없이 노동자들을 짓밟기 위해 한 몸이 된다. ‘경제 안정’(이것은 노동착취로 이윤을 극대화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안정을 뜻한다)과 ‘사태 종결’(노동자의 정당한 저항을 저들은 ‘사태’라고 부른다)이라는 명분으로 노동자의 절실한 요구를 무시하고 거래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그것은 이 땅의 물류를 책임지는 화물 노동자들의 중요성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화물연대가 파업하면 전체 물류가 멈추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자기 이윤이 실현되지 않을까봐 벌벌 떤다. 이들은 곧바로 정부, 경찰, 법원에 도움을 요청하는데 이 국가 기구들은 화물연대를 탄압하기 위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인다. 화물연대 파업과 같이 위력적인 파업은 이런 국가기구들이 ‘평화 시기’의 허울 좋은 말과 달리 실상은 자본가 계급의 도구일 따름이라는 것을 증명해준다. 이 기구들의 상층부 구성원들은 이 사회 지배 계급과 온갖 인맥과 돈의 끈으로 연결돼있으며, 이들의 업무 자체가 기존 질서(즉, 착취의 질서)의 유지를 위한 일들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현대의 국가 권력은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공동 업무를 관장하는 위원회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확실히 옳다.
자본가들은 투기하고, 담합하고, 기껏해야 기업가 정신이나 경영 철학 등을 뽐내기 바쁘다. 그러나 실제로 물건을 만들고 운송해 사회가 돌아가게 만드는 것은 노동자들이다. 파업은 노동자들이 진짜 사회의 주인이며 자본가들은 그 자리를 꿰차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있을 뿐이라는 진실을 증명해준다. 화물연대 파업과 같은 위력적 파업이 벌어지면 이 진실은 더욱 전국적이고 폭넓게 다가오므로, 지배자들은 그 진실을 미사여구로 덮기 힘들어진다. 그들은 노골적인 진압과 온갖 속임수, 폭력적 선동으로 맞대응한다.
저들은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한 사업장의 파업은 화물연대 총파업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도 이 투쟁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서광석 열사의 명예와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요구안 쟁취를 위해 함께 싸우자. 그리고 화물연대 총파업, 철도 파업처럼 중요한 파업 시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투쟁(서울) 온라인 기사(2026년 4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