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 고위 임원이 4월 20일(수) 점심쯤 지엠창원 비정규직 해고자 K에게 전화했다. 발탁채용 대상자 260명 중 거부한 15인의 자리에 들어갈 사람들을 알아봐 달라는 내용이었다. K는 지엠창원 공장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왔던 중요한 활동가다. 그런데 K는 “15자리에 들어갈 사람들을 지회 집행부가 모으면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 하니”라고 말하며, 20일(수) 밤 8시에 조합원들을 따로 소집해 논의하고 명단을 작성한 다음 사측에 넘겼다. 왜 지엠 고위 임원은 현직 노조 간부가 아닌 K에게까지 이런 제안을 했을까? K의 행동은 정당했을까?
1. 한국지엠은 발탁채용, 대량해고라는 깡패짓을 저질렀다
한국지엠의 불법 파견 범죄는 법원조차 수차례 인정했다. 노동부도 1,719명의 비정규직을 직접 고용하라고 명령했다. 한국지엠 카젬 사장은 불법 파견 범죄로 재판받고 있다.
지엠 사측은 최근에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섭하자고 금속노조에 요청했다. 3월 3일 상견례를 했는데, 사측은 3월 24일 3차 교섭에서 재직 중인 1차 하청 업체 직접공정 260명만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최후통첩을 했다. 1차 하청 간접공정도, 2·3차 하청도, 2019년 말에 해고당한 창원공장 650명 등 마땅히 정규직이어야 할 수많은 노동자를 배제한 것이다.
그런데 3월 31일 사측은 4월 30일부로 1차 하청 업체와 계약을 해지해 비정규직 노동자 350명을 해고하겠다고 했다. 채용한다고 해놓고 해고 통보하는 건, “짤리기 싫으면 무조건 받아!”라고 깡패처럼 협박하는 것이다.
채용 조건도 형편없었다. 지엠 사측은 겨우 500~1200만 원 정도만 위로금으로 주고, 근속은 40%만 인정하는 채용 조건을 제시하며, 수억 원의 체불임금과 직접고용이 걸린 불법파견 소송을 포기하라고 강요했다. 불법파견 범죄를 최소한의 비용으로 털어내겠다는 것이다.
2. 한국지엠은 깡패짓을 완성하기 위해 덫을 놓았다
한국지엠의 깡패짓을 용납할 수 없어 노조 교섭단은 만장일치로 교섭을 거부했다. 부평과 창원의 비정규직 지회는 사측의 기만적인 발탁채용에 응하지 말자고 조합원에게 호소했다. 조합원 일부는 발탁채용에 응했다. 형편없는 발탁채용안이지만 거부하면 해고하겠다는 자본가의 협박 앞에서, 당장 강하게 맞받아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고 판단했을 듯하다. 한편 부평과 창원 합쳐서 약 15명의 조합원은 발탁채용을 거부했다.
한국지엠 사측은 메이데이에 “지엠은 비정규직 없는 공장”이라고 쇼를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발탁채용을 거부한 조합원들의 자리에 들어갈 새로운 비정규직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비정규직지회 조합원과 비조합원 몇 명에게 개별적으로 전화하다가, 나중엔 지엠창원 비정규직 지회장에게 전화해서 ‘다섯 자리를 줄 테니 들어올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지회장은 거부하고 나중에 이를 조합원 밴드에 알렸다.
그런 다음 사측은 지엠창원 비정규직 K에게도 전화해서 사람들을 알아봐달라고 했다. 이것은 사측이 자신의 깡패짓을 완성하기 위해 노조활동가 K에게 덫을 놓은 것이다. 사측은 ‘발탁채용 거부자 15명’ 대신 들어올 사람들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조건까지 내걸었다. (1) 19년 말 지엠창원 해고자 (2) 1차 하청 직접공정 (3) 대법원 계류자. 이것은 대법원 판결을 앞둔 노동자의 숫자를 최대한 줄여 사측의 불법파견 범죄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발탁채용을 거부한 조합원의 자리에 다른 조합원이 들어가게 해서, 조합원들이 서로 분열하고 불신하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15명의 자리에 들어올 사람들을 자신들이 직접 고르면 불만이 자신들에게 돌아올 것이므로, 자신들을 대신해 15명을 골라보라고 노조활동가 K에게 제안한 것이다. 이것은 지엠 사측의 덫이었다. 교섭하자고 해놓고 한 달도 안 돼 대량해고를 통보하는 자본가 깡패들이, 해고당할 조합원의 자리에 들어갈 조합원을 노조활동가더러 선별해 보라고 교활한 덫까지 놓은 것이다.
3. 의도와 관계없이 자본에 협력한 건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할 수 없다
K는 이렇게 말했다. “비지회 조합원들이 복직 의사가 없다고 하면 사측은 또다시 비조합원 중심으로 곧바로 공개채용을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비조합원들보다 그동안 노조로 뭉쳐서 열심히 싸워 왔던 조합원이 들어가는 게 낫기에, K는 사측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합원이 들어가는 게 나은가 비조합원이 들어가는 게 나은가?’만 단순하게 생각해선 안 된다. 15개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는 중요한 문제다. 대체로 그 자리는 전체 비정규직 중 극소수만, 그것도 형편없는 조건으로 발탁채용하면서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것을 반대했던 조합원들의 자리다. 사측은 그 자리에 새로운 조합원들을 넣어서 노조 내 분열을 심화시키고 싶어 했다. 따라서 거기에 협조해선 안 됐다.
K는 그동안 사측이 제안한 대로 1차 하청 재직자만 특별채용할 것이 아니라 해고자들도 정규직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리고 이번에 K는 자기 말을 행동으로 옮긴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데 K는 이번에 사측에 맞서 싸워 사측의 260명 발탁채용안보다 더 많은 정규직 자리를 쟁취해서 해고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킨 것이 아니다. 깡패짓에 반대한 조합원 15명의 자리에 자신을 포함한 해고자들이 들어가기 위해 자본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K의 행동은 전체 노동자, 최소한 수많은 지엠 노동자 앞에서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K는 지엠 고위 임원의 제안을 점심쯤에 받은 뒤, 지엠창원 비지회장에게 간단히 알리고 “복직 의사가 있는 조합원은 오늘 밤 8시까지 모이자”고 조합원 밴드에 글을 올렸다. 지엠창원 비지회 조합원 145명 모두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는 없었다. 발탁채용을 거부한 부평 비정규직 지회 조합원 10여 명도 자신들의 자리에 사측 제안을 받아 K를 비롯한 창원 해고자들이 들어오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K가 만든 ‘지엠창원 비정규직’ 단톡방에 조합원, 비조합원 합쳐서 100명 넘게 있고, K는 그동안 교섭 상황, ‘해고자들도 정규직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의 유인물 등을 올렸지만 자신이 사측 제안을 받아 조합원들을 선별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전혀 알리지 않았다. 지엠 창원, 부평의 정규직 노동자 절대 다수에게도 이런 상황을 조금도 알리지 않았다. 수많은 노동자에게 비공개적으로 일을 처리한 건 그만큼 이 행동이 정당하지 않았기 때문 아닌가?
만약 K가 노동자계급의 이익에 복무하겠다는 정신으로 투철하게 무장한 활동가였다면 사측이 제안했을 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왜 나한테 이렇게 전화했습니까? 나는 지회의 일원이므로 사측의 개별적인 전화는 절대 받지 않겠습니다. 당신들의 260명 발탁채용안과 대량해고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650명의 창원 해고자를 포함한 모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방안을 내놓으십시오.” 그리고 사측이 깡패짓을 완성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덫을 놓으려 한다는 사실을 모든 지엠 노동자에게 곧장 알렸을 것이다.
노동자투쟁 서울 동지들은 이번의 중대한 오류가 발생한 것을 뒤늦게야 알았다. 그래서 오류를 즉시 파악하고 대응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우리 노동자투쟁 그룹은 2년 넘게 지엠창원에서 현장신문을 발간하고, 비정규직 문제 등 여러 현장사안에 개입해 왔다. 이번 사태가 우리와 무관하지 않기에 그리고 이런 오류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오래 전부터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기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2022년 4월 23일
노동자투쟁 서울 동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