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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행신 KTX 정비기지
 

철도 행신 현장신문 124호


  • 2025-08-14
  • 8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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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행신 KTX 정비기지 현장신문 <노동자투쟁> 124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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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환영은 좋지만 뜨거운 검수고는 싫다

 

올해 여름이 살면서 가장 시원한 여름일지 모른다.’ 어느 과학자가 경고한 말이다. 해가 갈수록 폭염이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래서 뜨거운 한증막 같은 검수고에서 일하는 게 해마다 더 힘들어지고 있다. 검수고에서 일하다가 더위 먹어 어지러워 약까지 먹었다는 노동자도 있다. 이대로 가만있으면 누가 쓰러질지 모른다.

신입사원들도 해마다 들어올 텐데, 그들도 뜨거운 환영은 좋지만 뜨거운 검수고는 싫다고 할 것이다!

 

철도노동자 옥죄려고 고속철 통합 반대?

 

국토부가 고속철 통합을 조심스레 검토하고 있는 듯하다. KTX를 수서역에, SRT를 서울역에 정차시키는 교차운행부터 추진하겠다고 한다. 고속철을 통합하면 KTX 요금을 10%가량 낮출 수 있고, 중복 비용 500억 원을 낭비하지 않으므로 철도노동자의 임금과 복지에 쓸 재원도 (노동자들이 강하게 요구한다면) 늘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속철을 통합하면 철도노조가 파업할 때 대응하기 힘들다, 차량 정비도 경쟁시켜야 한다며 철도노동자를 옥죌 궁리만 하는 자가 아직도 많다.

 

대수송기간, 인력은 더 줄었다

 

여름휴가철 대수송기간, 기차 운행편수는 늘었지만 차량을 청소할 현장 인력은 오히려 줄었다. 비품에서는 업무 중 사고로 엉덩이뼈에 금이 가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테크 사측이 강요하는 대체 휴가까지 겹치면 주간 근무자가 3명뿐인 날도 있다. 객차 청소 노동자들 역시 사고와 병가, 퇴사가 겹쳐 인력이 크게 줄었다. 주간 일용직 충원도 8월에는 고작 1명뿐. 결국 7월보다 인력이 더 줄었다. 사측의 무대책 속에 현장은 폭염보다 더 뜨겁게 과부하에 시달리고 있다.

 

예전처럼 얼음물을 쉽게 마실 수 없나?

 

예전엔 검수고에 있는 냉장고에서 얼음물을 꺼내 마실 수 있었다. 환경동 휴게실 냉동고에도 얼음물이 비치돼 있었다. 그래서 따로 얼음물을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이때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직 꽤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따로 얼음물을 준비해야 하고, 깜빡하는 날엔 엄청난 갈증을 느끼며 일해야 한다. 폭염에 일하는 노동자에게 얼음물을 제공하는 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어느 노조 소속이냐를 떠나 뜨거운 검수고에서 일하는 테크 환경노동자 모두가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은가?

 

쿨 목토시도 차별?

 

테크 사측이 최근 환경노동자들한테 쿨 목토시를 1개씩 줬다. 얇은 거라 금방 녹아 거의 2시간마다 얼려야 한다. 폭염 땐 1시간도 안 돼 다 녹는다. 그리고 1개만 줬기에 얼려놓는 동안엔 쓸 수 없다. 2개라면 하나 쓰는 동안 다른 하나를 얼려서 번갈아가며 쓸 수 있다.

바로 옆에서 일하는 코레일관광개발 소속 노동자는 2개 받아서 쓰고 있다. 정규직 대 비정규직의 차별로도 모자라 비정규직 안에서도 차별?

 

황당한 안전화 교환 기준

 

최근에 새로 지급한 안전화는 바닥이 너무 미끄러워, 신고 일하다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고까지 났다. 그래서 테크 사측도 새로 나온 안전화를 신지 말라며 교체해준다고 공지했다. 그런데 교체 조건이 가관이다. 신발택(태그)을 떼지 않은 것만 교환해주겠단다. 제품 하자로 교환하는 건데 택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진다니, 이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철도노조 80년사]

여름을 뜨겁게 달군 887.26 기관사 파업

 

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한국 노동자계급은 역사의 무대에 뛰어올랐다. 그런 사회분위기에서 철도청이 다이아(철도운행표)를 개악해 서울-부산 구간을 기관사 교대 없이 강제로 운행하려 하자 불만이 폭발했다. 어용노조 집행부가 형편없는 내용으로 사측과 합의하자, 715일부터 4-500여 명이 용산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농성지도부도 어용노조와 합의해 투쟁을 꺾으려 했으나, 노동자들이 강력히 반발해 726일 전면파업에 나섰다. 전국의 열차가 멈췄다. 노태우 정부는 경찰을 투입해 1,463명을 연행했다. 비록 파업은 끝났지만, 노동자들은 이후 단결투쟁력을 강화해 1994년에 서울부산지하철 노동자들과 역사적인 공동파업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