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문구
비가 많이 오면 검수고 안에도 물이 샌다. 그래서 바닥이 미끄럽고 그만큼 사고 위험이 더 커진다. 코레일 사측과 테크 사측은 모두 이럴 땐 자전거를 타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일을 줄여주거나 인원을 늘려주진 않아서, 자전거를 타지 않으면 일을 제때 끝낼 수가 없다.
결국 저들이 자전거를 타지 말라고 한 말은 현실성 없는 공문구라는 걸, 모두가 다 알고 있다.
■20년 전 – 철도 구조 개악에 맞선 6.28 파업
20년 전인 03년 6월 28일 새벽 4시, 철도노동자들은 총파업에 돌입했다. 노무현 정부가 ‘철도민영화는 철회하고 이후 철도구조개혁은 철도노조 등과 충분히 논의해 결정한다’는 4.20 합의를 위반한 채 운영과 시설의 상하 분리 등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이 파업으로 조합원 7천 명이 징계받았다. 이런 희생으로 ‘시설유지보수는 철도공사에 위탁한다’는 철산법 단서 조항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지금 이 조항이 위협받고 있다. 강산이 두 번 바뀌고, 정권이 네 번 바뀌었지만 투쟁은 계속된다!
■철도 경쟁 – 다다익선 아닌 다다익악
철도공단 이사장 김한영은 국토부 관료 시절 SR 분리를 주도했다. 지금도 “영국은 33개, 독일은 400개, 일본은 120개의 철도 운영회사가 서로 경쟁하고 있다. 제2의, 제3의 SR 설립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관제와 유지·보수도 철도공단이 가져가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경쟁 체제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의 모델인 영국에선 1999년 열차 충돌 사고로 31명이 사망하는 등, 민영화 이후 사고가 더 잦아졌다. 주된 이유는 민간 철도사가 비용을 아끼려고 안전 투자에 인색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철도 경쟁은 철도 노동자와 승객의 안전을 더 많이 위협한다. 다다익선이 아니라 다다익‘악’이다.
■안전모는 만능이 아니다
테크 사측은 무슨 사고만 나면 안전모가 만능 대책인 것처럼 안전모 제대로 쓰고 다니라고 한다. 그런데 안전모는 사고 났을 때 피해를 줄이는 사후 대책이지, 사고를 막는 예방책이 아니다.
안전모가 필요하다는 건 모두가 다 안다. 하지만 부족한 인원, 위험한 작업환경은 그대로 방치해둔 채 안전모 착용만 강조하는 건, 사고를 예방하는 게 아니라 사고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탁상공론
물론, 검수고는 고철이 많으므로 이동할 때 안전모는 필요하다. 하지만 작업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안전모를 쓰는 게 정말 맞나?
예를 들어, 객차 내부를 청소할 때도 안전모가 반드시 필요할까? 내부 청소할 때도 무거운 안전모를 계속 쓰면 시야도 가리고 목과 머리가 너무 아프진 않은가? 좀 더 가볍고 시야를 가리지 않는 안전모로 개선할 수는 없나?
중요한 건, 안전모 쓰고 일하는 노동자들의 의견은 들어보지도 않은 채, 안전모를 안 쓰는 사람들이 모든 걸 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비합리적인가?
■누가 주 6일 근무를 원할까?
6월 19일에 테크 기간제 채용공고가 떴다. 고양기지 차량환경에서 12월 31일까지 근무할 일근 3명(사원 1명, 대체인력 2명)을 모집한단다.
그런데 주 5일 시대에 누가 주 6일 근무를 원할까?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주 6일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일은 힘들고 고용은 불안정한데 연말까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채용 권한을 가진 테크 사측과 정부 관료들이 현장 노동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루 4만 보
뱃살 빼려고 4만 보 걷는 건 축복일 수 있다. 하지만 일 때문에 4만 보 걷는 건 고역이다. 1개월 알바 노동자는 안전을 위해 첫째 주엔 자전거 안 준다는 얘길 들었다. 그런데 1주일이 지났는데도 요새 사고가 많이 난다며 자전거를 계속 안 주겠다고 했단다. 그래서 자전거 없으면 하루에 3만 5천 보에서 4만 보까지 걸어야 해 너무 힘드니까, 죽겠다고 했더니 알바 4명에게 자전거를 2대만 줬단다.
4만 보 걸어 다리가 힘들면 의자 돌리는 것도 어렵고, 식판에도 더 잘 부딪힌다. 안전을 위해 자전거 안 준다는데, 일은 많이 줘서 몸이 고되고 사고는 더 잘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