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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팜플렛
 

영국 공산주의 운동과 노동자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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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팜플렛이 나왔습니다!


<영국 공산주의 운동과 노동자계급>

영국 워커스파이트(Workers’ Fight) 지음, 노동자투쟁(서울) 옮김(A5 사이즈 56쪽 분량)

가격: 3,000원


● 목차


들어가며

영국 공산주의 운동의 뿌리

전투적 뿌리

러시아 혁명의 영향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한 투쟁

탄압에 맞서

계급 속에서 당을 건설하기

노조 속 공산주의 활동

실업자를 조직하기

스탈린주의가 영국까지 영향을 미치다

배반당한 총파업

경기침체에 맞선 투쟁

임박한 혁명?

1929년 대붕괴 후

우선회하다

‘반파시즘 전선’

계급투쟁에서 영향력을 얻기

2차 대전: 영국 제국주의를 지지한 공산당

노동자의 요구를 거스르다

2차 대전 후의 쇠퇴

다른 조직

점진적 몰락

영국에서 혁명적 공산당을 건설하기 위해


● 발간사


한국에서 어떻게 진짜 노동자당을 만들 수 있을까?

물가가 뛰어 실질임금이 삭감되고, 적은 인원으로 빡세게 일하며, 경제가 침체해 실업이 늘어나고, 3차대전의 경고음이 이곳저곳에서 들리며, 환경재앙이 심각해지고, 여성‧장애인‧이주민 차별이 지속되는 모습을 보면서 자본주의에 염증을 느끼고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노동자와 젊은이들이 꽤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본주의를 끝장내고, 착취와 억압, 전쟁과 환경파괴가 없는 노동자세상을 건설할 수 있을까? 인류 역사는 1917년 10월 혁명 같은 노동자 혁명보다 더 나은 길을 아직 보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노동자 혁명을 승리로 이끄는 데에서 볼셰비키형 정당보다 더 나은 조직도 보여주지 않았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끝장내고 계급 없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진실로 원한다면, 노동자계급에 뿌리박은 볼셰비키형 혁명정당을 어떻게 건설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탐구해야 한다.


이 측면에서 이 팜플렛은 의미가 분명히 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초에 영국의 수많은 혁명가들은 (비록 스탈린주의 지도부가 좌충우돌하긴 했지만) 노동자혁명을 목표로 현장에서 헌신적으로 활동했다. 1923년 철도 빅토리아역 사례에서처럼 현장분회를 건설하고 현장신문을 기본 활동수단으로 채택해 맹렬히 활동했다.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불만을 대변하면서 “혁명가들과 지지자들을 일상적인 집단 활동을 통해 결속시키면서 평범한 노동자들 사이에서 지지를 얻고 파업과 같은 대규모 사건에 직접 개입할 수 있도록 준비시켰다.” 


또한 “착취에 반대하는 일상적인 투쟁에 개입하고 투쟁에 참여하는 노조 활동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 노조 안에서도” 꾸준히 활동했다. 특히 평조합원들이 노조 활동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게 만드는 데 에너지를 많이 쏟았다. 경제위기로 실업자들이 늘어나자 실업자운동도 주도적으로 조직하고 이끌었다. 1920-30년대에 벌어진 중요한 노동자투쟁들에 영국공산당 현장투사들은 막대한 희생을 무릅쓰고 적극 개입했다.


1925년에 영국공산당의 공장 세포가 300개였고, 1926년 10월에 당원 수가 10,730명이었던 것은 (비록 프랑스, 독일 등에 비하면 꽤 작았을지라도) 오늘날의 사회주의조직들에 비하면 조직 규모와 노동자계급에 대한 영향력이 모두 훨씬 더 컸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것은 1920-30년대가 혁명적‧준혁명적 시대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레닌과 트로츠키가 이끌었던 초기 코민테른의 혁명전통(‘노동자혁명의 깃발을 들고 현장 노동자들 속에서 분투한다’는 전통)이 영국공산당의 기층 투사들 속에 확실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이 팜플렛은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와 관련해 시사해주는 바가 많다.


한편, 영국공산당의 역사는 우리에게 ‘반면교사’의 역할도 톡톡히 할 수 있다. 1923년 10월 독일혁명이 실패한 다음, 스탈린은 세계혁명을 포기하고 소련 관료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 중점을 두면서 ‘일국사회주의론’을 주장했다. 그 연장선에서 동쪽에선 부르주아 국민당과 손을 잡고 중국 노동자혁명의 목을 부러뜨렸으며, 서쪽에선 영국 노총 관료들과 손을 잡고 1926년 총파업을 패배로 이끌었다. 


1928년 코민테른 6차대회에서 '혁명적 정세가 오고 있다'며 정세를 잘못 판단하면서 공산당 노동자와 사민당 노동자 사이의 공동전선을 거부하는 극좌노선을 채택했다. 그리고 소수 혁명적 노동자들만 따로 노조를 건설하는 ‘적색노조’ 전술을 펴면서 공산당 활동가들을 다수 노동자들로부터 고립시켰다. 


그런 다음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자, 영국과 프랑스 부르주아지와 손을 잡기 위해 ‘반파시즘 인민전선’ 정책을 펴면서 혁명가들이 개량주의자들은 물론 부르주아 정치인들을 추종하게 했다. 조직은 정치를 따르게 마련이므로 당연하게도, 조직 체계를 현장분회 체계에서 지역 선거구 체계로 바꿨다. 영국공산당은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위해 노조로 뭉쳐 파업하는 것조차 가로막는 당으로 더 변질해갔고, 1980년대 중반엔 결국 해산했다. 영국공산당의 좌충우돌과 몰락 과정은 우리가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가, 왜 볼셰비키형 혁명정당을 여전히 추구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준다.


“이 [공산당] 활동가들은 수백만 노동자에게 노동자계급의 직접적 개입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고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 노동자들이 자기 삶을 바꾸려면 부르주아 민주주의 경로를 벗어나 스스로를 정치적으로 조직해야 한다는 생각을 매일매일 끊임없이 상기시켜 줬다.

이런 기본적 전통은 사라졌다. 이 나라 대부분의 노동자, 특히 젊은 노동자들은 살면서 진짜 공산주의 노동자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으며 정치 활동가들이 자기 사상을 위해 현장에서 그렇게 분투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이것은 이 팜플렛을 작성할 당시의 영국만이 아니라 지금 한국에서도 ‘쓰디쓴 진실’이다. 따라서 자본가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진지한 노동자와 젊은이라면, 영국공산당의 경험, 특히 초창기의 경험을 세계 노동자계급 혁명전통의 필수적 일부로 간주하고, 그 자양분을 온전히 흡수해야 한다.


2023년 5월 9일

노동자투쟁(서울)


● 본문 속으로


“빅토리아역에서 두 쪽짜리 《빅토리아 소식》을 격주로 제작했다. 그 현장신문은 엄청나게 지지받았다. 이곳저곳으로 배포됐고 사람들도 신문을 찾았다.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하면 곧바로 알려졌다. 그 인기의 비결은 간단한 문제도 기민하게 처리하고,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 이 현장신문은 철도노동자들의 일상적인 불만을 부각시켰다.”


“이 활동가들은 수백만 노동자에게 노동자계급의 직접적 개입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매일매일 끊임없이 상기시켜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