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년 전인 1956년 10월, 헝가리 노동자들은 소련군 전차에 맞서 무기를 들었다. 그러나 혁명은 소련군의 무력진압으로 패배했고, 스탈린주의 정권은 이를 ‘반혁명’으로 낙인찍었다. 노동자들은 왜 혁명을 일으켰으며, 그 경험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2차 대전 이후 소련은 동유럽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했다. 헝가리의 마차시 라코시 정권은 공장과 은행을 국유화했지만, 노동자들에게 생산과 사회를 통제할 권한은 주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경찰을 앞세워 반대세력을 탄압하고 높은 생산 할당량과 낮은 임금을 강요했다. 노동조합은 국가의 부속기관이 됐고 파업도 금지됐다. ‘노동자 국가’를 자처했지만, 실제론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자본가 국가였을 뿐이다.
1953년 스탈린의 사망과 1956년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판을 계기로 억눌렸던 불만이 터져 나왔다. 10월 23일 학생 시위에 노동자들이 대거 합류했고, 정치경찰의 발포와 소련군의 개입으로 시위는 무장봉기로 발전했다. 노동자들은 총파업을 벌이고 곳곳에 노동자평의회를 세워 공장과 지역의 운영을 맡았다. 이들은 소련군 철수와 정치적 자유뿐 아니라 파업권과 노동조합의 자유, 노동자의 공장 통제를 요구했다. 단순히 소련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직접 운영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평의회는 전국적인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소련과의 협상에 의존한 임레 너지 정부에 정치적 해결을 기대했고, 평의회를 하나의 권력으로 결집할 혁명정당도 없었다. 결국 11월 4일 소련군의 재침공으로 무장봉기는 패배했다. 이후에도 노동자들은 총파업으로 저항했지만 탄압을 막아내지 못했다.
헝가리 혁명은 국유화가 곧 노동자권력을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동시에 노동자들이 스스로 사회를 운영할 역량을 보여줬으며, 이를 국가권력으로 발전시킬 혁명적 지도력과 국제적 연대의 필요성도 남겼다.
70년이 지난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노동자들의 삶도 위협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노동 존중’을 내세우지만 노동개악을 밀어붙이고 있다. 메가특구 노동특례를 통해 주52시간제 적용 제외, 연장·야간·휴일수당 미지급, 기간제 2년에서 4년으로 연장 등 자본가들이 요구해 온 노동조건 후퇴를 추진하려 한다.
헝가리 혁명이 던진 질문은 오늘도 유효하다. 노동자들은 자기 운명을 기만적인 정치인들과 정부에 맡길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조직하고 투쟁하며 사회 운영의 주체로 나설 것인가. 혁명 70주년을 맞아 노동자들이 보여준 놀라운 가능성이 왜 꺾였는지, 그 가능성을 현실화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되새겨야 한다.
월간 정치신문 <노동자투쟁>(서울) 83호, 2026년 10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