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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국제
 

1999: 나토가 베오그라드를 폭격하다.


  • 2025-02-23
  • 333 회

{이 글은 원래 프랑스 혁명적노동자조직 LO의 신문기사인데, 미국 스파크 그룹이 영어로 번역했고, 이를 다시 우리가 한글로 번역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됐을 때, 언론은 이 전쟁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럽에서 일어난 첫 번째 전쟁이며, 나토는 평화를 위한 기관이라고 계속 보도했다.

 

그러나 1999년 3월 24일, 나토 항공기들은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코소보를 폭격하기 시작했는데, 이곳들은 9년 전에 무너지기 시작한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남아 있었다. 이 폭격은 78일 동안 지속됐다. 민간인 수백 명이 사망했고 수십만 명이 폭격을 피해 이웃 나라들로 피난을 가야 했다. 세르비아는 물질적 피해를 많이 입었는데, 특히 수도인 베오그라드가 집중 타격을 받았다. 관공서, 교량, 발전소와 공장들이 허물어졌다.


세르비아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정권이 이전의 유고슬라비아 지방이자 알바니아 북부에 있는 코소보에서 자행한 ‘인종 청소’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며, 나토는 이런 폭격을 정당화했다.

밀로세비치 정권은 수년간 폭정을 휘둘렀다. 1987년부터 그는 자기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 세르비아 민족주의에 의존했는데, 특히 알바니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밀로세비치는 자신을 대(大)세르비아의 수호자라 칭하며, 끊임없이 민족적 적대감을 조장했다. 유고슬라비아 대중은 수십 년 동안 함께 살았지만 이런 민족주의 선동에 이끌려 전쟁에 휘말렸다. 또한 다른 현지 지도자들도 세르비아의 지도자처럼 권력을 갈망하며 행동였다.


미국과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 지도자들은 인종 청소의 무대를 마련한 밀로세비치의 범죄 행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봤다. 하지만 그들은 나중에 태도를 바꿨는데, 대중의 이익을 고려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의 유일한 목적은 발칸반도를 자신들이 확실하게 통제하는 것뿐이었다.


나토의 이른바 인도적 개입은 민족주의자들과 밀로세비치의 준군사 조직에 연료를 제공했다.  제국주의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전쟁에 가담했다는 것을 사람들이 잊게 만들려고, 언제나 똑같은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출처: 미국 혁명적노동자조직 스파크의 신문, 2022년 3월 28일

<노동자투쟁> 온라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