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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국제
 

대만 : 제국주의의 산물


  • 2025-02-23
  • 351 회

{이 기사는 프랑스 혁명적노동자조직 LO(노동자투쟁)의 8월 12일자 신문 기사를 미국 스파크가 영어로 번역하고, 우리가 한글로 다시 옮긴 것이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  ] 안에 옮긴이 주를 달았다.}


대만은 중국 남동부 해안에서 약 120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14,000평방마일의 작은 섬이다. 오늘날 2,300만 명 조금 넘게 살고 있는 이곳은 한 세기 넘게 제국주의의 공작 무대였다.


이 섬은 오랜 기간 동안 중화 제국의 통치를 받았다. 1895년 신흥 일본 제국주의가 중국을 무릎 꿇린 이후로는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1945년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전한 이후 제국주의 열강들은 대만을 장제스 치하의 중국 국민당 체제로 되돌리기로 결정했다. 이 민족주의 독재 정권은 1920년대 중반 중국에서 자기 모습을 드러냈지만, 중국 공산당이 이끄는 강력한 농민 봉기와 맞닥뜨렸다.


1945년 초 미국의 총참모부는 대만을 군사 기지로 만들었다. 그들은 중국 내륙에 파견된 국민당 사단을 무장하고 훈련시켜 마오쩌둥 공산군의 진군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에 대만 주민들은 일본 식민 통치자들이 대만에서 떠나가는 것을 보고 안도했다. 그러나 섬사람을 희생시켜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것에만 혈안인 국민당 관료들의 독재와 부패, 잔혹성이 곧 나타났다.


따라서 대만 사람들은 봉기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1947년 2월 27일 벌어진 국민당 경찰의 또 다른 과잉진압은 결정타를 날렸다. [허가받지 않고 장사했다는 이유로 경찰이 담배 노점상 여인을 폭행했으며, 이에 항의하기 위해 모인 군중을 향해 발포해 학생 한 명을 죽였다.] 시위는 2주 동안 전개됐다. 그러나 3월 8일, 중국 본토에서 도착한 새 국민당 군대가 우위를 점했다. 그들은 일주일 동안 밤낮으로 대규모로 처형했고, 저항하는 사람은 누구든 총살했다. 이 대학살은 1만에서 3만 명 사이의 목숨을 앗아갔다.


미군의 보호 아래, 1949년에 이 섬은 중국 대륙에서 공산당 병사들에게 패배한 민족주의 군대의 마지막 피난처가 됐다. 국민당과 장제스는 대만 국민에게 지독한 독재를 자행했다. “백색 테러[우익이 벌이는 테러]”라 불리는 40년 간, 14만 명이 중국 공산당에 동조하거나 민족주의 정부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수감됐다. 3~4천 명이 처형됐다. 이 섬은 노동자 계급의 감옥이 됐다.


미국은 대만 현지 부르주아 계급과 [그들을 위한] 산업의 발전에 다방면으로 재정을 지원했다. 이 지원은 미국의 군사 원조와 베트남 전쟁에 얽힌 것, 이에 더해 수십억 달러의 직접적인 보조금으로 이뤄졌다. [대만은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과 함께 남베트남을 지원했었다.] 대만은 전쟁 기간 내내 군사 장비를 위한 예비 부품 공장과 주요 군수식량 보급처, 미군 상설 예비 기지 역할을 했다.

 

계엄령은 1987년에야 해제됐다. 이를 통해 대만 정권은 1990년대부터는 민주주의적 겉모습을 갖췄다. 오늘날 국민당은 더 이상 집권하지 못하고 야당에 머물러 있다. 대만 부르주아 계급은 제국주의의 보호 아래 제국주의가 제공한 시장과 자본에 힘입어 성장하고 번영해왔다. 지배계급은 중국 본토의 많은 사람보다 생활수준이 높은 일부 계층 사이에서 어느 정도의 공감대를 형성해 왔다. 그러나 대만 자본가들과 그 폭력배들을 보호하는 국가 기구는 여전히 독재 정권이다. [2020년 총통 선거에서 승리한 현 대만 집권당인 민주진보당은 소위 좌파 노선을 내세우고 있으나 국민당과 마찬가지로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


출처: 미국 혁명적노동자조직 스파크의 신문, 2022년 8월 15일

노동자투쟁(서울) 온라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