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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국제
 

대중의 전투성과 혁명적 지도부


  • 2025-02-25
  • 329 회

대중의 전투성과 혁명적 지도부


{이 글은 프랑스 혁명적노동자조직 LO가 2022년 10월 13일에 작성했고, 대회에서 채택한 문서 중 하나다. 원문은 LO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기관지 <계급투쟁> 228호(2022년 12월 – 2023년 1월호에서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장기화되고 심화된 위기에 직면해, 최근 몇 년간 노동자와 민중의 반응은 실제 사회적 폭발을 포함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부족하지 않았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지 말고, 2010-2011년의 소위 아랍의 봄 운동을 되돌아보자. 깊은 사회적 불만에서 등장한 이 운동은 튀니지의 벤 알리와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부를 몰락시켰다. 그리고 이런 정치적 변화가 생활조건의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몇 년 안에 대중의 상황이 나빠지는 동안 이집트에서 훨씬 더 가혹한 독재 정권이 돌아오고 튀니지 정권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았기에 이런 희망이 얼마나 실망스럽게 좌절됐는지를 알고 있다. 그러나 운동은 중동 전 지역으로 퍼졌다. 리비아, 시리아, 예멘, 심지어 아랍에미리트에서도 운동이 일어났는데, 나중엔 군사 개입과 전쟁으로 이어졌다.


2019년, 알제리에선 몇 달 동안 매주 대규모 대중 시위를 동반한 ‘히락’ 운동이 벌어졌다. 정부가 주도권을 되찾기까지 수개월 동안 다시 한 번 깊은 사회적 불만을 바탕으로 “정권, 물러나라”는 정치적 목표가 널리 지지받았다. 마침내 운동이 가라앉았지만, 사회적 요구는 여전히 표출되고 있다.


또 다른 운동은 특히 2019년 이후 수단을 뒤흔들었다. 이 운동은 소멸된 것이 결코 아니다. 2018년 말 빵값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를 시작으로, 이 운동은 군대와 이슬람 정당의 지지를 받던 오마르 알 바시르 독재 정권을 몰락시켰다. 2019년 6월 3일, 군대가 유혈 진압에 나섰지만 대중 운동을 파괴하지는 못했다. 이렇게 탄압받았지만, 수단 전문가 협회로 대표되는 소부르주아 지도부가 정식화한 민주적 요구를 중심으로 시위는 계속됐다.


같은 지역에서 레바논과 이라크는 특히 2019년 이후 상당한 대중 운동을 보여줬다. 이스라엘 점령지는 물론 이스라엘에서도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정권에 맞서 빈번하게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란에선 2017~2018년에, 그리고 2019년에도 반란이 잇따라 일어났고, 동시에 노동자들의 투쟁도 많이 전개됐다. 그리고 여기서는 2022년 가을, 베일을 안 좋게 썼다고 비난한 종교 경찰한테 여성 청년이 살해된 후 분노가 엄청나게 폭발했다. 자신들의 도덕적 질서를 강요하려는 종교 경찰이 주저 없이 폭력을 사용한 여성 억압만이 아니라 이슬람 공화국 독재 자체가 도전받고 있다.


대중의 반발은 중동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스리랑카는 올 봄과 여름에 광범위한 반란의 현장이었다. 인도에선 모디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농민 운동이 벌어졌다. 칠레에선 2019년 교통비 인상에 대한 항의를 시작으로 실제 사회적 폭발이 일어났다. 미얀마에선 2021년 2월 군부 쿠데타가 노동자계급을 포함한 거대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카자흐스탄에선 2022년 초부터 에너지 가격 인상에 맞선 사회적 폭발이 일어났다. 10년 전처럼 석유 가스 노동자들이 선두에 섰다. 이 운동은 모든 산업과 도심으로 퍼져나갔고, 독재에 맞선 시위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이 운동은 대체로 자발적이었다. 자칭 민주주의자인 소수 정치인과 다소 급진적인 개량주의 노조 간부들 말고는 지도부가 없었다. 권력이 더 이상 대도시들을 통제할 수 없었던 운동의 정점에서도, 기존 체제를 타도하고 자기 권력을 세울 전망을 전투적이고 집중화된 다수 노동자계급에게 제시할 수 있는 세력은 등장하지 않았다. 푸틴이 카자흐스탄 관료들과 러시아 관료들 그리고 서방 석유회사와 광산회사들의 이익을 위해 운동을 진압하려고 군대를 보냈을 때, 그 운동은 물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무장해제당했다.


카자흐스탄에서 벌어졌던 일이 2020년에는 벨라루스에서 되풀이됐다. 숫자도 많고 경제적으로도 강력하지만 혁명적 정치 지도부가 없는 노동자계급이 체제에 도전하는 거대하고 장기적인 운동의 기폭제였고 핵이었다. 이 운동은 이웃 나라 노동자들 속에서도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탄압과 전망 부재 때문에 결국 꺾였다.


그래서 부족한 것은 대중의 투지가 아니다.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한 상황에서 다른 상황으로, 자주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대중은 노동조합 투쟁과 파업에서부터 억압 세력에 맞선 시위와 충돌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발견한 수단으로 반응한다. 그러나 이렇게 전투적이지만, 이렇게 투쟁하는 동안 제출된 목표는 자본주의 체제나 제국주의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민주적, 사회적 요구를 결코 넘어서지 않는다.


이런 운동의 선두에 등장한 지도부는 매우 달랐다. 수단에서는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라는 관점을 모두 버린 스탈린주의 전통의 공산당과 동거하는 이슬람 정당이 있다. 아이티에서는 심지어 무장한 갱단 지도자들이 정치권력에 도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쨌든, 이들은 혁명적 지도부가 아니다. 종교 지도부가 아닐 경우 사유 재산의 문턱에서 멈추는 소부르주아, 개량주의, 민족주의 지도부들이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부르주아 체제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존 민족국가의 틀과 제국주의가 강요한 세계 분열에서 벗어나는 것도 고려하지 않았다. 이것은 이런 운동의 한계를 보여주며, 동시에 왜 그런 운동이 종종 아주 빠르게 막다른 골목에 이르는지도 설명해준다. 쇠퇴하는 자본주의는 진정한 사회 진보를 받아들일 수도 없고, 스스로 물러설 수도 없다. 심지어는 독재 정권이나 권위주의 정부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지배 체제의 순화조차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지금 없는 것은 세계적이고 혁명적인 공산주의 노동자당이며, 볼셰비키들이 공산주의인터내셔널[3인터내셔널]을 창건해 세우려고 했던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지도부다. 대중이 아무리 투쟁적이라고 해도, 이 지도부는 대중투쟁 과정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날 수 없다. 금융 자본의 지배 방식인 제국주의 체제를 종식시키려면 금융자본을 섬기는 국가와 인류를 인위적으로 가르는 국경과 함께 부르주아 계급을 타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정책이 필요하며, 과거 모든 노동자계급 투쟁의 교훈을 통합한 강령으로 무장한 세계 노동자계급만이 그 과업을 해낼 수 있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곧 트로츠키주의 강령에 기초한 혁명정당, 진정한 세계 혁명당인 인터내셔널을 노동자계급 속에서 건설하고 뿌리 내리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분명히 주장하는 것이다.


노동자투쟁(서울) 온라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