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2024년 7월 15일(월)에 시작된 주간에 나온 스파크의 모든 현장신문 1면에 실린 사설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 ] 안에 옮긴이 주를 여러 군데 달았다.}
"미국에는 이런 종류의 폭력을 포함해 어떤 폭력도 설 자리가 없습니다." — 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 암살 시도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첫 공개 반응이었다.
트럼프는 빠르게 트루스 소셜[도널드 트럼프가 설립한 소셜 미디어]에 "동의!"라는 한마디를 남겼다.
바이든은 덧붙였다. “폭력은 미국 민주주의에 발붙일 자리가 없습니다.”
사실, 폭력은 바로 "미국 민주주의"의 기반이다. 폭력은 극소수 미국 자본가 계급이 다수, 즉 노동으로 사회에 필요한 물질적 부, 식량, 상품, 서비스를 생산하는 노동자 계급에게 자신들의 지배를 강요하는 수단이다.
물론, 트럼프와 바이든은 자신과 같은 이들을 향할 때는 폭력에 반대한다. 그런데 모든 폭력에 반대한다고? 그 두 사람이? 집어치우라고 해라!
바이든과 트럼프 그리고 그 이전의 대통령들은 미군의 자원이 다른 나라의 민중을 겨눌 수 있도록 승인했다. 미군은 오늘날 가자에서 우크라이나까지, 그리고 수단, 예멘, 소말리아, 파키스탄, 시리아의 "그림자 전쟁"에 이르기까지 여러 곳에 연루돼 있다.[‘그림자 전쟁’이란 공식적이거나 직접적인 전쟁 선언 없이, 자국의 개입 사실을 은폐하고 특정 국가의 중요 시설을 공격하거나 해당 국가의 핵심 인물을 암살하는 것 등을 의미한다.]
미국 기업들은 전 세계에 투자해 원자재 형태의 부를 수탈하고, 저임금 노동자들을 착취한다. 미국 정부와 미군은 이 도적들의 뒤를 봐 준다.
이 폭력은 미국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에서 부를 빼앗아 그 나라 민중을 빈곤하게 만드는 데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폭력은 바로 그 미국 자본가 계급에게 부를 제공하는 미국 노동자 계급에게도 향하고 있다.
1883년에 시작된 하루 8시간 노동제 운동부터, 2022년에 의회를 통과해 바이든이 서명한 전국적 철도파업을 봉쇄한 법률에 이르기까지,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고, 노동시간을 줄이며, 더 안전한 직장을 만들려는 노동자들의 모든 큰 시도는 폭력에 맞닥뜨렸다.
1886년에는 하루 8시간 노동제 운동의 지도자들이 사형 선고를 받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아이오와 주 오텀와 시에 경찰 병력이 파견돼 호멜[세계적인 육류가공업체]에서 해고당한 파업노동자들을 지지하는 피켓 시위를 공격했다. 1997년에는 UPS[미국의 종합 물류 회사]의 대규모 파업 지도자가 연방법원을 통해 노조에서 제명되고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고 위협당했다. 파업으로 얻은 것을 다시 빼앗겼다. 2022년의 철도 파업도 성사됐다면 지도자들은 감옥에 갇혔을 것이다. 또 노조는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 자금이 바닥났을 것이다. 사형 등의 직접적 폭력이든, 법적 장벽과 사법체계를 이용한 파업봉쇄 등의 간접적 폭력이든, 자본가들의 국가 기구는 단결한 노동자들에게 폭력과 위협을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
1860년대의 재건 운동[남북전쟁 직후 흑인에게 평등한 권리를 부여하기 위한 운동]부터 조지 플로이드 살해 사건으로 촉발된 대규모 시위까지, 기본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시도는 폭력에 맞닥뜨렸다. 1960년대에는 말콤 엑스, 메드가 에버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조지 잭슨, 미시시피 3인방(앤드류 굿맨, 제임스 체니, 마이클 슈워너), 비올라 리우조와 같은 많은 인권 운동가들이 암살당했다.
오늘날 청년들은 거리에서 죽어가고 있다. 빈곤과 정신적 문제, 그에 따른 절망에 대한 자본주의 사회의 답이 [경찰] 폭력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경찰한테] 살해당한 사람들은 안 좋은 시간에 안 좋은 장소에 있었고, 경찰이 좋아하지 않는 대답을 했을 뿐이다. 1992년 디트로이트에서 맬리스 그린은 구타당해 사망했다.[맬리스 그린은 마약 단속 도중 경찰에게 손전등으로 머리를 맞아 사망했다.] 2015년 볼티모어에서 프레디 그레이는 "난폭한 주행"을 당했다.[프레디 그레이는, 경찰이 연행 중 안전벨트를 채우지 않고 난폭운전을 해 사망했다.] 2020년 루이빌에서 브리오나 테일러는 경찰이 잘못 침입한 아파트에서 자고 있었다.[브리오나 테일러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압수수색을 한 경찰과 애인 사이의 총격전 과정에서 사망했다.] 이외에도 매년 수천 명이 살해당한다.
폭력이 미국 민주주의에 발붙일 자리가 없다고 바이든이 감히 주장할 수 있는가? 1960년대에 H. 랩 브라운[미국 흑인 권리 운동가]은 이미 이 터무니없는 주장에 "폭력은 체리파이만큼 미국적인 것"이라고 답했다.
소수의 최고 부유층이 다수를 지배하며 다수의 노동을 착취해 부를 얻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항상 폭력을 통해 관철됐다. 폭력은 "미국 민주주의"가 기반을 두고 있는 현실이다.
노동자 계급이 이런 삶의 현실을 직시하고 자본가 국가와 그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스스로를 조직하기 전까지는, 자신들과 나머지 인류에게 좋은 삶을 제공할 방법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출처: 미국 혁명적 노동자 조직 스파크의 신문, 2024년 7월 22일
노동자투쟁(서울) 온라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