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진 설명: 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와 전남지역본부는 8월 3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특별법에 포함된 노동 관련 특례를 "노동권을 후퇴시키는 개악"이라고 규정하며 즉각적인 철회를 요구했다.
격주간 철도 현장신문 <노동자투쟁> 1면 사설, 2026년 8월 12일
이재명 정부가 ‘메가특구특별법’을 연내에 통과시키겠다며 속도를 내고 있다. 반도체·AI 첨단산업을 키운다며 특구를 지정해 기업에 세금 감면과 보조금, 전력·용수·부지까지 국가가 다 깔아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에 담긴 ‘노동특례’의 실체가 기가 막힌다.
연구개발 인력에겐 주52시간 상한을 아예 적용하지 않는다. 밤샘 노동을 시켜도 연장·야간·휴일수당을 안 준다.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을 1개월에서 6개월로 늘려, ‘연속 16주간 주80시간 노동’까지 허용한다. 기간제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파견 허용 업종도 확대한다. 한마디로 노동개악 종합선물세트다. 자본가들의 수십 년 숙원을 한꺼번에 풀어주겠다는 것이다.
‘일할 자유’라는 새빨간 거짓말
김정관 산자부 장관은 “일할 자유 막아선 안 된다”며 중국의 ‘996’(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6일 노동)까지 들먹였다. 하지만 주72시간 노동인 996은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 높은 중국에서조차 2021년 최고인민법원이 ‘불법’이라고 판정한 근무 형태다. IT 노동자들의 과로사가 잇따르고 ‘996 과로사 보험’까지 등장했으며, 노동자들은 “996으로 일하면 중환자실(ICU)에 실려간다”는 ‘996.ICU’ 저항 운동을 벌였다.
지금 세계 자본가들은 반도체와 AI를 놓고 시장쟁탈전, 곧 이윤을 위한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다. 각국 정부는 자국 대기업에 돈, 땅, 전기, 물을 퍼주며 총력전을 편다. 이 전쟁에서 총알받이로 내몰리는 것이 노동자들이다. “일할 자유”란 자본가들이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을 죽도록 일하게 만들 자유다. 더구나 반도체 현장에선 1군 발암물질 등 유해화학물질이 일상적으로 쓰인다. 거기서 과로까지 감내하라는 건 노동자를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기간제 4년 연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주52시간 예외는 윤석열 정부가 밀어붙이다가 노동자들의 반발로 좌절된 조항들이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는 자본가 계급의 이익에 복무한다는 점에서 역대 국민의힘 정부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특구 안에서만”이란 말도 믿어선 안 된다. 벌써 국민의힘은 “호남만 풀어주면 지역 차별”이라며 전국 모든 산업으로 주52시간 예외를 확대하는 법안들을 내놓고 있고, 자본가 언론들은 환호하고 있다. 오늘 호남 반도체 노동자의 권리가 무너지면, 내일은 전국 모든 노동자의 권리가 무너질 것이다.
AI 거품 위에서 도박 — 손실은 사회에, 이익은 자본가에게
이 2천조 원짜리 메가특구 도박은 ‘AI 거품’ 위에 세워져 있다. 지난 7월 코스피는 한 달 만에 20% 넘게 폭락했고, 자본가 언론들조차 거품 붕괴를 날마다 경고하고 있다. 세계 빅테크들은 AI에 연간 1천조 원 넘게 쏟아붓지만, 그 돈을 회수할 수익 전망은 잘 안 보인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법칙이다. 이윤의 원천은 노동자의 노동이므로, 자본가들이 경쟁에서 이기려고 앞다퉈 기계와 기술에 투자를 늘릴수록 이윤율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 방’을 노리고 신기술 투기로 돈이 몰리고, 과잉투자 끝에 기대한 이윤이 안 나온다는 게 드러나면 거품은 터진다. 2000년 닷컴 거품이 그랬고 2008년 금융위기가 그랬다. AI라고 예외일 수 없다.
거품이 터지면 대가는 누가 치르는가. 정부는 환경영향평가까지 생략하며 “속도전을 넘어 전격전”을 다그친다. 기업은 투자 약속을 언제든 철회할 수 있지만, 송전탑·발전소·댐은 한번 지으면 물릴 수 없다. 사업이 잘되면 이익은 자본가가 챙기고, 거품이 꺼지면 그 비용은 전기요금·수도요금·세금으로 노동자와 서민에게 청구할 것이다. ‘이윤은 사유화, 손실은 사회화’, 이것이 자본가 정부의 본색이다.
지금 필요한 건 정부의 선의를 구걸하는 ‘사회적 대화’가 아니라 투쟁이다. 양대노총 지도부의 대통령 면담 요구에 기대를 걸고 가만히 있으면 눈 뜨고 코 베인다. 박근혜의 노동개악도, 윤석열의 주69시간제도 노동자들의 저항 앞에서 좌초했다. 현장에서부터 토론하고 힘을 모아 함께 맞서야 한다.
넓게 보자면, 자본가들의 이윤 전쟁이 계속되는 한 노동자의 시간과 건강을 빼앗으려는 공격은 되풀이될 것이다. 노동자를 무한히 희생시켜 이윤을 무한히 쌓으려는 자본가 세상을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으로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