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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사설
 

물가는 치솟는데 임금은 묶겠다는 건가


  • 2026-07-11
  • 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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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철도 현장신문 <노동자투쟁>(서울), 2026년 7월 1일
 
2027년 최저임금 심의가 또 법정 시한을 넘겼다. 노동계는 시급 1만 2천 원을, 경영계는 1만 320원 동결을 요구하며 1,680원의 격차로 맞서고 있다. 월급으로 따지면 한 달에 35만 원 차이다. 이 돈을 놓고 자본가들은 나라가 무너지기라도 할 듯 엄살을 부린다.
 
사용자위원들은 1992년 이래 동결을 20번, 삭감을 3번 요구했다. 이는 임금을 한 푼이라도 덜 줘서 이윤을 최대한 늘리려는 자본의 본성을 보여준다.
 
동결은 곧 삭감이다 — 물가 폭등의 칼날 앞에서
 
물가가 폭등하는 한가운데서 임금을 묶는다는 것은 사실상 임금을 깎겠다는 뜻이다. 지난 3년간 최저임금은 누적으로 7.3%밖에 안 올랐지만, 같은 기간 식료품 값은 13.1%나 뛰었다. 소득의 3분의 1을 먹는 데 쓰는 저임금 노동자에게 '동결'은 곧 밥상을 빼앗는 삭감이다. 비혼 노동자 1인의 실태생계비는 월 282만 원인데 최저임금은 월 215만 원에 그쳐, 매달 67만 원이 부족하다.
 
물가 폭등의 뿌리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있다. 미국 제국주의가 일으킨 이란 전쟁은 유가를 끌어올렸고, 그 여파로 환율은 28년 만에 1,540원을 오르내린다. 계란(특란) 10개가 사상 처음 5천 원을 넘어 1년 새 38.6% 올랐고, 자본주의의 환경 파괴가 부른 폭염과 엘니뇨는 농작물 작황을 무너뜨려 식량가격을 폭등시켰다. 전쟁도, 환율도, 기후재난도 노동자가 일으킨 것이 아닌데 그 청구서는 모두 노동자에게 날아온다. 이런 마당에 임금을 묶겠다는 것은, 폭등하는 생활비를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빈곤의 늪에 더 깊이 밀어 넣겠다는 전쟁 선포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사치가 아니라 최소한의 생존권이다.
 
그 인상은 870만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에게도 적용해야 한다. 배달·대리운전 노동자도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잇는 노동자이지만, 자본은 알고리즘으로 이들을 분 단위까지 통제하면서도 책임질 때는 '개인사업자'라는 가면 뒤로 숨는다. 대기·이동 시간을 포함하면 실질 시급이 4,250원에 불과한 까닭이다. 한편 자본가들이 들고나온 업종별·지역별 '차등적용'은 노동자를 갈라치는 함정이다. 같은 시간을 일하고도 더 적게 받으라는 것은, 가장 약한 노동자의 임금부터 끌어내려 결국 모두의 임금을 깎겠다는 속셈이다.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협박을 넘어
 
최저임금을 올리면 해고가 쏟아진다는 협박은 자본의 단골 수법이다. 최저임금이 오른다고 노동자가 반드시 해고되는 건 아니다. 해고가 발생한다면, 그건 최저임금 인상이 아니라 자본가의 이윤욕 때문이다. 임금 인상을 구실로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자르려 하면, 노동자는 임금 인상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 인상과 고용 보장을 함께 내걸고 맞서야 한다.
 
노동자를 자영업자와 맞붙게 하는 이간질도 마찬가지다. 자영업자의 다수는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는 '나홀로 사장'이라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자영업자의 목을 진짜로 조르는 것은 쥐꼬리만 한 임금이 아니라 본사가 뜯어가는 높은 수수료와 건물주가 챙기는 살인적 임대료다. 노동자와 자영업자가 서로를 적으로 삼는 순간 웃는 건 대자본과 건물주뿐이다.
 
최저임금은 일부 저임금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노동자의 임금 기준이 되는 최저선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모든 노동자에게 임금을 더 올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줄 수 있다. 이것도 두렵기에 자본가들은 최저임금을 어떻게든 묶어두려 한다.
 
여기서 우리는 더 근본적인 진실과 마주한다. 올해 임금을 조금 올린다 해도, 자본주의가 굴러가는 한 노동자의 삶은 결코 안정되지 않는다. 전쟁이 터지면 유가가 뛰고, 투기 자본이 몰리면 물가가 뛰며, 기후가 무너지면 밥상이 무너진다. 올려 받은 임금은 곧 물가에 잠식되고, 노동자는 아무리 빨리 달려도 늘 제자리다. 노동자가 만든 부가 소수 자본가의 이윤으로 사유화되는 이 체제를 끝장내지 않는 한, 빈곤과 불안은 형태만 바꿔 다시 찾아온다.
 
그러므로 최저임금은 단순한 숫자 문제가 아니다. 모든 노동자의 임금과 생존을 둘러싼 싸움이자, 우리 노동으로 굴러가는 이 사회를 자본가들과 노동자들 중 누가 이끌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