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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사설
 

‘살인 더위’ 뒤에 살인적 자본주의가 있다


  • 2025-07-24
  • 9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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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철도 현장신문 <노동자투쟁> 1면 사설, 2025년 7월 16일


117년 만의 ‘살인 더위’가 왔다. 7월 8일 서울의 한낮 기온이 37.8도까지 치솟았다. 이런 폭염 속에서 일하다 노동자들이 쓰러지고 있다. 7월 4, 7, 8일에 택배 노동자 3인이 잇따라 사망했다.


폭염보다 무서운 건 자본가의 탐욕


7일 구미의 한 아파트 공사장에서 23세 베트남 이주 하청노동자가 일하다 숨졌다. 건설노조가 사측과 ‘혹서기 노사합의’를 체결해 한국 노동자들은 오후 1시에 퇴근했는데, 베트남 이주노동자는 4시까지 일하다가 사망했다. 건설업 자본가들은 인건비를 아끼려고 이주노동자 채용을 늘리면서 기본적인 안전보건교육조차 하지 않았고, ‘혹서기 노사합의’도 적용하지 않았다. 폭염이 아니라 자본가 탐욕이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갔다.


한편, 택배 기업들은 첨예한 시장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려고 최근 ‘주7일 배송’을 줄줄이 도입했는데, 인력은 그만큼 충원하지 않아 노동자들을 폭염 속 과로사로 내몰고 있다. 최근 사망한 택배 노동자 3인은 기업들의 시장 쟁탈전에서 총알받이로 쓰이다가 희생당한 셈이다.


폭염 사망이 잇따르자 7월 11일 정부 규제개혁위(규개위)는 ‘체감온도 33도 이상 시 2시간마다 20분 휴식’을 의무화했다. 이 조항은 지난해 9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올해 6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는데, 규개위가 4, 5월 두 차례 심의에서 번번이 퇴짜를 놓았다. 이 조항이 ‘기업에 부담’을 준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자본가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에게 폭염에도 쓰러질 때까지 일하라고 한 것이다. 


그러다가 노동자들이 죽고 나서야 마지못해 의무화한 것이다. 하지만 이 조항은 10만 택배 노동자를 비롯한 특수고용노동자에겐 아예 적용되지 않는다. 죽음의 행렬 전까지 기업 규제를 극구 회피한 정부도 잇따른 폭염 사망의 공범 아닌가! 그리고 노동 존중처럼 보이는 정책도 얼마나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가!


폭염은 자본가 탐욕의 산물


지금의 폭염은 지구온난화 때문이고, 지구온난화는 온실가스 배출 때문이다.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에 대한 경고는 수십 년 전부터 나왔다. 하지만 발전, 철강, 자동차, 정유산업 등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의 자본가들은 ‘환경보다 이윤’을 중시하며 예전엔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가 최근엔 겨우 생색내기만 하고 있다.


폭염은 자본가 탐욕의 산물이지만, 폭염으로 희생당하는 건 주로 노동자들이다. 실외에서든 실내에서든 노동자들이 폭염 때문에 힘겹게 일할 때, 자본가들은 에어컨 빵빵 나오는 사무실에서 노동자들을 어떻게 더 쥐어짤지만 궁리한다. 


노동자 자녀가 에어컨이 없거나 비싼 전기세 때문에 에어컨을 켜기 어려운 찜통 같은 집에서 공부할 때, 자본가 자녀들은 자기 집이든 학원이든 최적의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다.


폭염과 가뭄 등으로 농산물 생산비가 올라 노동자들은 더 많은 돈을 내고도 더 적게 먹을 수밖에 없을 때, 농식품 자본가들은 폭염과 가뭄 등을 핑계 삼아 이윤을 늘리려고 물가를 계속 올린다.


노동자들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폭염 때문에 일하다가 죽지 않으려면 ‘혹서기 노사합의’를 체결한 건설노조처럼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등으로 뭉쳐서 사측과 정부를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


나아가 지구온난화를 되돌리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전 세계 인구 중 30%가 죽음에 이를 수 있는 폭염에 1년에 최소 20일 이상 이미 노출돼 있고, 온실가스 배출이 이대로 지속되면 금세기 말엔 이 비율이 74%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한다.


사회는 여러 산업과 교통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하기 위해 효과적이고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런데 이윤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다. 따라서 자본가의 이윤이 아니라 사회의 필요와 노동자의 생명을 중시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모든 걸 생산하는 노동자 계급에겐 그럴 만한 충분한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