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파면됐다. 대량살상을 통해서라도 집회‧시위와 파업을 금지하고 자본 천국을 만들려 했던 독재자가 파면됐다. 4개월간 노동자 민중이 싸워서 얻은 값진 승리다. 하지만 이것은 제한적 승리일 뿐이고, 여러 위험을 안고 있는 덫이기도 하다.
제한적 승리
왜 ‘미친 독재자’ 하나를 끌어내리는 데 123일이나 걸렸는가? 그동안 우리는 이 사회의 정치적 야만성을 똑똑히 봤다. 극우는 광기 어린 집회를 통해 전국에서 세력을 길렀다.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 내각은 탄핵을 끝까지 반대하고 훼방했다. 법원과 검찰은 법기술로 장난치며 윤석열을 석방시켰다.
헌법재판소 엘리트들은 중학생한테도 뻔한 결론을 빨리 내리지 못한 채 시간을 질질 끌었다. 노동자 민중이 쓸어버려야 할 극우 반동 세력이나 그 눈치를 보는 지배자들이 사회 곳곳에 널려 있다.
덫
개량은 투쟁의 성과이자 덫이다. 윤석열 파면도 마찬가지다. 경총은 이제 “극심한 갈등을 종식”하고 “노사 모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 “경제활력을 제고”하자고 했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윤석열 재구속’, ‘내란세력 척결’이나 임금과 일자리 등을 위해 싸워선 안 되며 자본가 이윤이 ‘활력 넘치게’ 불어날 수 있도록 조용히 희생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건 덫이다!
그런데 이런 덫은 이미 존재했다. 그리고 그 덫은 또 하나의 자본가 당인 민주당이 놓았다. 12월 3일 노동자 민중이 맨몸으로 탱크를 막아 친위 쿠데타를 저지했는데, 민주당은 곧바로 상위 1% 투자자들을 위해 금융투자소득세를 확실히 폐지해주고, 철도노조엔 애매모호하게 약속하며 파업을 중단하게 했다. 수십 만 노동자 민중이 떨쳐 일어나 12월 14일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됐는데, 민주당은 즉시 ‘내란공범’인 국힘과 한덕수 내각에 국정협의체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대중의 관심이 헌재 판결에 쏠려 있던 3월 20일, 민주당은 국힘과 손잡고 ‘대폭 더 내고, 조금 더 받는’ 연금개악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윤석열 퇴진 투쟁이 국회와 헌재라는 지배계급 질서의 틀에 갇히고, 노동자 계급이 자기 요구를 당당히 내걸고 자본가들과 보수양당 모두에 맞서 단호히 싸우지 못한 결과, 윤석열이 파면당하긴 했지만 노동자 민중의 삶은 아직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2017의 되풀이인가 제2의 1987인가?
6월 3일 조기 대선에선 이변이 없는 한 이재명이 당선될 것이다. 그런데 물가가 수년째 급등한 반면 임금은 제자리였는데, 이재명이 임금을 대폭 올리겠는가? 청년실업자 400만 명에게 일자리를 주겠는가? 절대 그럴 리 없다.
트럼프가 25% 상호관세 폭탄을 떨어뜨려 한국 경제 위기가 증폭되고 있으므로, 이재명 정부도 노동자를 공격할 것이다. 총칼로 위협하지 않을지라도 (IMF 위기 때의 김대중 정부처럼) ‘기업부터 살려야 한다’고 정신적으로 협박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으려 할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이재명 정부에 강하게 맞설 준비를 해야 한다.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내란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은 서로의 차이를 뛰어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자고 하는데, 민주당에 대한 타협적 태도로는 노동자의 권리를 하나도 쟁취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태도로는 극우 반동 세력도 절대 무너뜨릴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만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같은 공약을 내팽개치고, 부동산 폭등을 잡지 못해 윤석열 정부가 등장했듯, 이재명 정부도 비슷한 방식으로 국민의힘이 다시 집권하도록 길을 열어줄 수 있다. 역사에서 배우자. 2017년 문재인 정부 때처럼 보수양당 구조라는 덫에 갇히지 말자.
87년 6월 항쟁으로 군사독재가 흔들리자, 노동자들은 대투쟁을 통해 역사의 무대로 우뚝 올라섰다. 지금의 노동자들도 생산의 주인이라는 자기 힘을 자각한다면, 임금인상, 일자리 늘리기, 내란세력 척결 등 당면 목적과 불평등, 실업, 환경파괴, 극우 준동을 낳는 자본주의 철폐와 노동자 세상 건설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위해 역사의 무대에 다시 나설 수 있다.
노동자투쟁(서울) 2025년 4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