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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사설
 

투기꾼은 돈더미, 실거주자는 빚더미


  • 2025-02-23
  • 182 회
지난 4년간 집값이 계속 무섭게 올랐다. 그래서 이번에 정부가 대출을 조이고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집값을 잡지는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2017년 5월 서울 아파트 가격(30평 기준)은 약 6.2억 원이었으나 올해 5월 11.9억까지 올랐다. 매년 1.25억씩 오른 셈이다.
반면 노동자 평균임금은 연평균 132만 원, 최저임금은 연평균 141만 원 오르는 데 그쳤다. 집값이 임금보다 100배나 빠르게 올라 다주택자는 더 부자가 됐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더 가난해졌고 전세에서 월세로, 도시에서 변두리로 내몰리고 있다. 월급 200만원 받아 월세로 50만원 내는 청년노동자도 많다. 이런 비정상이 왜 계속되는가?

경제는 불황, 자산은 호황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이후 지속된 불황이 코로나19로 더 심해졌는데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은 계속 올랐다. 정부가 경기부양 목적으로 시장에 푼 막대한 돈이 실물 경제가 아니라 비생산적인 자산 시장에 쏠렸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까지 시중에 풀린 돈은 3,400조 원이 넘고 금리를 0.5%로 낮춘 작년 5월부터 13개월 간 풀린 돈만 360조가 넘는다.
왜 이런 막대한 돈이 생산 분야가 아닌 자산 시장에서만 돌고 있는가? 계속되는 경제불황으로 이윤율이 낮아 기업들이 생산 분야에 투자해서 벌 수 있는 돈보다, 부동산 등 자산 시장에 투기해서 벌 수 있는 돈이 더 많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사회의 ‘필요’가 아니라, 자본가들의 ‘이윤’에 따라 투자가 결정된다. 따라서 사회에 필요한 곳보다 자산 시장이 자본가들에게 더 많은 이윤을 가져다준다면 사회의 거대한 부는 투기로 낭비된다.

낡아빠진 공급대책

이처럼 집값 폭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주택 부족이 아니다. 투기 수단이 된 집은 가격이 오를수록 사려는 사람이 늘기 때문에 공급만 늘려서는 가격이 내려가지 않는다. 오히려 다주택자의 주택수를 늘려줄 뿐이다. 실제 최근 10년간 공급된 주택 중 절반 이상을 다주택자들이 사재기했다.
그런데 낡아빠진 공급대책이 포장지만 바꿔 또 나오고 있다. 현재 대선후보 지지율 1, 2위인 이재명과 윤석열은 둘 다 임기 동안 전국에 250만 가구 이상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윤석열은 각종 규제완화로 공급을 확대하겠다며 대놓고 투기자본을 위한 공약을 발표했다. 반면 이재명은 역세권 등에 ‘기본 주택’ 100만 호를 저렴한 임대료로 공급하겠다고 한다. 서민들에게 주택을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해선 집으로 투기하는 자본의 이해관계와 정면충돌해야 한다. ‘이재명은 합니다’? 이재용 가석방을 사실상 지지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이재명은 친자본가 후보이기에 당선되더라도 문재인처럼 ‘하는 척’만 할 가능성이 더 높다.

비정상적인 체제

역대 자본가 정부는 주택을 투기수단에서 주거수단으로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거품이 터지지 않도록 관리만 해왔다. 투기자본의 목표도 거품을 키운 후 시세차익을 실현하고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것이다. 그 결과 실거주 목적의 임차인‧1주택자는 투기꾼에게 거품 낀 전셋값과 집값을 현금으로 지불하고 빚더미에 앉는다.
1,800조 원에 이를 정도로 이미 가계부채가 심각한데, 금리가 올라 서민들의 이자 부담은 더 커졌다. 부동산 거품까지 빠지면 그 피해는 주거를 위해 집을 산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부동산 가격 조정 과정이 순탄하게 진행될지 2008년 미국처럼 폭력적으로 진행될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부자들은 자산 투기로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도 계속 빚더미에 앉을 것이다. 빚더미에 짓눌리지 않고 집 걱정 없이 사는 건 주택을 돈벌이 수단으로 만드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동자들이 싸울 때만 가능하다.


월간 정치신문 <노동자투쟁> 1면 사설, 2021년 9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