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기업 ‘처벌’법인가 ‘보호’법인가?
중대재해 기업 ‘처벌’법인가 ‘보호’법인가?
1월 3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장비에 눌려 죽었다. 현대차 원하청이 안전수칙도 무시한 채 서둘러 일을 시켰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하루에 7명, 1년에 2,400명이 산재로 죽는다. 이것은 전쟁과도 같은 대규모 기업살인이다. 그런데 이렇게 죽이고도 자본가는 “감옥 갈 일 없고, 432만 원 벌금 내면 끝나는 세상”이다.
이런 야만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 민주노총이 주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 10만 입법 청원을 성사시켰다. 그리고 김용균 열사의 어머니 등 산재 유가족이 혹한 속에서 국회 앞 단식 농성을 전개해 왔다. 그러나 중대재해법은 지금 누더기가 되고 있다. 정부가 12월 28일 국회에 제출한 법안(정부안)이 이를 잘 보여준다.
알맹이 다 빼고 껍데기만 남겼다
먼저, 중대재해 개념부터 틀렸다. 정부안은 1인이 죽으면 중대재해가 아니고, ‘동시에 2인 이상이 죽어야’ 중대재해로 규정할 수도 있게 했다. 2020년 상반기에 2인 이상 사망사건은 302건 중 9건(3%)이었을 뿐이다. 결국 정부안은 대부분의 산재사망을 외면하겠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적용 예외가 너무 많다. 법 공포한 지 1년 후에 시행하고, 50~99인 사업장에는 2년간 적용을 유예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4년 유예하겠다고 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1월 4일 ‘300인 미만 사업장도 2년 유예’를 추가하자고 제안했다. 중대재해는 이런 작은 사업장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발생한다(지난해 전체 사망자(855명)의 94.4%(807명)가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서 발생했다). 따라서 그동안 해마다 2,400명씩 죽어나가도록 방치하겠다는 셈이다.
또한, 자본가의 책임을 크게 축소한다. 중대재해 발생 때 인과관계를 추정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조항을 빼버렸다. 또한 ‘안전보건 이사’한테 책임을 넘기면서 사장(대표이사)이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했다. 산재 문제의 핵심은 비용과 인력을 투입하는 것인데 이는 사장이 결정한다. 따라서 사장에게 강하게 책임을 묻지 않으면 산재를 줄일 수 없다.
발주처에도 책임을 물을 수 없게 했다.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한익스프레스 이천화재참사의 주요 원인은 발주처의 공기(공사기간) 단축 지시였는데, 이런 발주처에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다.
‘죽음의 외주화’도 계속 허용하고 있다. 자본가들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죽음의 외주화’(특히 사외하청)를 더 악용할 것이다.
손해 배상 책임도 크게 낮췄다. 손해배상 규모를 손해액의 ‘5배 이상’에서 ‘5배 이하’로 축소해 버렸다.
정부안에서 더 후퇴할 수도 있다. 12월 31일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중대재해법 비공개회의를 통해 음식점, PC방, 노래방, 목욕탕 등 ‘다중이용시설’의 소상공인을 처벌하지 말자고 했다. 그런데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사건, 2018년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 참사 사건 등은 다중이용시설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기업살인을 끝장내려면
경총 같은 자본가단체가 중대재해법에 구멍을 숭숭 내려 해왔는데, 정부는 이런 자본가들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했다. 정부는 ‘자본가들의 민원처리반’일 뿐이다. 그리고 180석을 확보하고도 중대재해법을 누더기로 만들고, 시간을 질질 끌어온 것이 보여주듯 더불어민주당은 ‘자본가와 더불어 가는 당’일 뿐이다.
결국, 노동자들의 안전은 자본가들이나 그 정부에 기대서는 보장받을 수 없다. ‘후퇴 없는 중대재해법(기업살인법) 제정’, ‘작업중지권 쟁취’, ‘안전시설‧안전인력 확충’ 같은 요구를 내걸고 노동자들이 크게 단결할 때만 안전한 일터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이윤 제일’을 위해 ‘안전 제일’을 공문구로 전락시키는 자본주의 사회가 중대재해를 끊임없이 낳고 있다. 따라서 ‘이윤보다 안전’, ‘돈보다 생명’을 중시할 수 있도록, 자본가세상을 노동자세상으로 바꾸기 위해서도 힘을 모아야 한다.
<노동자투쟁> 현장신문 1면 사설(2021년 1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