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운전강요, 책임자를 처벌하라!”, “아프면 쉴 권리, 보장하라!”
4월 4일(화) 오전 영등포역 광장에서 철도노조 구로승무지부 조합원들(1호선을 운행하는 기관사들) 및 이들과 연대하는 노동자‧시민들의 구호가 울려 퍼졌다. 이들은 사측이 연가‧병가를 통제하고, 인사권을 남용해 현장을 길들이려고 해온 것에 항의했다. 구로승무 기관사들은 오래 전부터 만성적인 인력부족에 시달려 왔다. 노선이 복잡하고, 시설이 노후해 기피 사업소였기 때문인데, 지난해에는 기관사가 코로나에 걸렸는데도 관리자가 병가도 쓰지 못하게 하면서 운전을 강요했다.(작년 10월에는 구로 기관사들이 연차를 사용하기 위해 줄을 길게 선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투쟁은 작년 하반기 근무평정에서 시작됐다. 하반기 근무평정에서 선배 기관사 6명이 몇몇 후배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 결국 올해 1월이 되면서 무더기 진급역전 사태가 발생했다. 근무평정 점수가 나왔을 때부터 노동자들은 이의신청을 했다. 하지만 사측은 무응답으로 일관하다가 ‘병가 사용’ 등을 얘기했다. 아파서 쉬었을 뿐인데, 그걸 구실로 진급에서 떨어뜨리다니! 입사 순으로 진급하던 철도의 관행을 사업소에서 비상식적인 이유를 들어 깬 것이다. 이에 선배 기관사들뿐 아니라, 진급한 후배 기관사들도 분노해 대자보를 써 붙였다.
1, 2월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진급역전 사태에 대한 소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했지만 사업소, 광역본부 등 사측은 묵묵부답이었다. 오히려 대자보를 기습 철거하는 등 해결 의지가 없다는 것만 보여줬다. 심지어 근무평정을 주관하는 관리자가 구로승무지부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기까지 했다. 명백한 노조탄압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 와중에 3월 근무평정에서도 팀장 직무대리를 한 후배들이 선배들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 역전이 또 발생해 사측이 인사권을 남용해 현장을 통제하려 한다는 점이 더 분명히 드러났다.
사측이 문제 해결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아 구로승무지부는 투쟁 수위를 높여왔다. 구로역에서 날마다 선전전을 해왔고, 현재는 영등포역에서도 대시민 선전전을 이어오고 있다. 기자회견도 그런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이번 투쟁에 대의원을 비롯한 많은 조합원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진급역전 사태가 모두에게 결코 납득할 수 없고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구로승무 기관사들과 이 사태를 듣는 모든 사람이 의아해하고 있다. 아파도 병가를 사용하지 못하고, 병가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진급이 누락되는 문제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문제다. 진급역전 사태가 발생한 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모두에게 비상식적인 이 문제가 이렇게까지 해결되지 않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 연·병가 통제, 진급역전, 노조 탄압이 왜 일어났는가는 더 큰 맥락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부와 자본가들은 노동자계급에게 피해를 떠넘기고,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주 69시간제가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공공부문 인력감축, 직무성과급제 도입을 통한 노조 분열책동, 민영화 시도, 노조 탄압 등이 있다. 이런 시도들은 노동자계급의 반발에 부딪힐 텐데 철도노조는 공공부문에서 투쟁력이 높은 사업장이다. 2013년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 2016년 성과연봉제 반대 파업 등에서 위력을 보여줬다. 철도노동자들은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릴 때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철도노조에서도 기관사들은 파업의 주력이었다. 그중에서도 구로승무 기관사들은 파업 참여율이 대부분 90%가 넘어갈 정도로 파업의 주축이었다. 작년에도 구로승무지부는 안전운행 투쟁을 해 인력충원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국토부(정부)와 사측은 적은 인원에게 많은 일을 시키기 위해 연·병가를 통제하고 인사권을 남용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현장을 길들이려 한다. 공정성이 전혀 없는 무더기 진급역전 같은 악질적인 수법으로 조합원들을 이간질시켜 노조의 조직력을 약화시키려 한다. 얼마 전 코레일 사장 직대는 “노조와 타협 없다”고 선포했다. 연병가 통제 문제, 진급 역전 등이 아무리 부당해도, 노조 앞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사측은 보이고 있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문제가 지지부진한 채 해결되지 않는 이유다.
이렇듯 정부의 노동자 분열‧통제 강화, 노조약화 맥락에서 이번 진급역전 사태가 벌어졌고, 이에 맞서 구로승무가 투쟁하고 있다. 이것이 구로승무 기관사들만의 투쟁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을 위한 투쟁으로 봐야 하는 이유다. 구로 기관사들은 한 발 먼저 투쟁에 나섰을 뿐이다. 이번 사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사측은 연·병가 통제와 인사권 남용, 노조 탄압을 철도의 다른 사업소로 확대할 것이고, 정부는 다른 공공부문 사업장과 민간부문 사업장으로 확대할 것이다. 이미 철도의 다른 사업소에서도 진급역전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아프면 쉴 권리’ 같은 노동기본권을 지키고, 사측과 정부의 탄압에 맞서 민주노조를 지키려는 이 투쟁은 모든 노동자를 위한 투쟁이다. 구로승무 기관사들의 정의로운 투쟁을 적극 지지하고 연대하자.
노동자투쟁(서울) 온라인 기사, 2023년 4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