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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사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반대한다


  • 2025-03-05
  • 175 회

12월 28일 경주에서 50대 하청노동자가 가동 중인 설비에 부딪혀 사망했다. 29일 부산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40대 하청노동자가 42m 밑으로 떨어져 숨졌다. 언제까지 노동자들이 소중한 목숨을 이렇게 계속 잃어야 하는가?


누더기법, 솜방망이 처벌


태안화력 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한 김용균, 평택항에서 일하다 쇳덩이에 깔려 사망한 이선호 등 일터에서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자 대책을 마련하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래서 2021년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고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산재가 발생하면 책임자를 강하게 처벌해 중대재해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법이다. 당시 50인 미만 사업장의 시행이 2024년 1월 27일로 유예됐고,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제외돼 누더기 법이라고 비난받았다. 

그런데 그동안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받은 경우에도 ‘솜방망이 처벌’뿐이었다. 2년간 456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했지만, 재판에 넘겨진 건 겨우 29건뿐이고, 그중 한국제강 1건만 실형을 선고받았다. 2022년 3월 경남 함안군 한국제강에서 60대 하청노동자가 1.2t 방열판에 다리가 깔려 숨졌다. 이 회사의 대표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중대재해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했다. 그런데도 법 최저형량인 징역 1년 선고에 그쳤다. 태안화력의 하청노동자 김용균을 산재로 죽게 만든 원청 대표이사는 12월 7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까지 받았다.


50인 미만 사업장 산재살인 2년 더 묵인?


법 제정 후 50인 미만 사업장(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 미만) 적용을 3년 늦췄는데 2년 더 늦추라는 자본가들의 떼쓰기를 들어주기 위해 지금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2년 유예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민주당도 조건을 내걸고 유예 논의를 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2년 유예란 산재살인을 2년 더 묵인하겠다는 것인데, 민주당도 여기에 한 발 들여놓고 있는 셈이다.

그러자 정부가 민주당의 요구에 호응하는 척하며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이는 민주노총이 주장한 대로 “법 제정 이후 3년 동안 진행하고, 실패로 귀결된 대책을 포장지만 바꾸어 재탕 삼탕한 맹탕 대책”일 뿐이다. 민주당도 정부 대책을 비판하긴 했지만, 조건부 논의 찬성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가 보잘것없는 떡고물을 조금 더 던지면 민주당이 덥석 물고 야합해, 1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2년 유예를 통과시킬지도 모른다.(복지 축소, 부자 감세 예산안을 민주당이 최근에 합의해준 것을 보라.) 민주당은 총선을 앞두고 노동자들의 표도 의식할 수밖에 없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자본가들의 이익을 중시하는 자본가계급의 정당이기 때문이다.


이윤보다 생명


산재의 80%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10년간 50인 미만 사업장 산재 사망 노동자는 12,045명이었고, 해마다 700명 이상이 죽어갔다. 총성만 없을 뿐 그야말로 대량 학살이다.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제동을 걸지 않으면, 노동자의 목숨은 이윤을 위한 도구일 뿐인 끔찍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안전은 더 위협받고 죽음의 행렬은 더 늘어날 것이다.

자본가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이 ‘불합리한 규제’라고 말한다. 노동자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자본가들이 산업안전을 지키도록 조금이라도 강제하는 것은 저들에게 ‘불합리’다. 반대로 이윤을 위한 산재 살인이 저들에겐 ‘합리적’이다. 주 52시간만 넘지 않으면 야근과 밤샘근무를 반복해서 시켜도 좋다는 12월 25일 대법원 판단이 자본가들에게 ‘매우 합리적’인 것처럼 말이다. 

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치지 않고 일하려면, 중대재해처벌법을 대폭 강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본가들에게만 ‘합리적’이고 노동자들에겐 ‘매우 불합리’한 이윤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윤보다 생명이다!

 

철도 현장신문 <노동자투쟁>, 2024년 1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