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결국 자본가들의 요구를 받들어 노란봉투법을 거부했다. 국회를 통과한 법을 간단히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무거운 족쇄
노란봉투법은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뜻하는데, 그동안 노조법 2‧3조는 노동자들에게 족쇄와 같았다. 비정규직은 1,100만이고 그중 간접고용만 해도 800만에 이른다. 이런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으면 이 세상은 굴러갈 수 없다. 배를 만들 수 없고, 차를 생산할 수 없으며, 화물이나 택배를 운송할 수 없다. 기차나 지하철도 운행할 수 없으며, 마트에서 상품을 판매할 수 없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다.
그렇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강요당해도 노조로 뭉쳐 진짜 사장을 상대로 싸우기 어려웠다. 그래서 노조법 2조를 개정해 진짜 사장을 상대로 교섭하고 투쟁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고 숱하게 요구해왔다.
또한 자본가들은 손해배상을 무기로 노동자들의 투쟁을 봉쇄하고, 무겁게 처벌해 왔다. 이 손배 제도 때문에 노동자들이 20여 년 동안 수없이 죽고 고통받아왔다. 두산중공업 배달호, 한진중공업 김주익 열사부터 쌍용차 노동자들까지. 지난해 대우조선 하청지회 파업 때 자본가들은 무려 470억 원의 손배 폭탄을 노동자들에게 떨어뜨렸다. 철도 같은 공공부문에서도 걸핏하면 파업을 불법으로 내몰고, 손해배상으로 족쇄를 채웠다. 그래서 노조법 3조를 개정해 손배를 금지하라는 운동이 계속 벌어져 왔다.
가진 자들의 독재
노란봉투법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의미가 제한적일지라도 노동자들은 이 법이 통과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11월 11일엔 11만 노동자가 모여 ‘노란봉투법 거부권 반대’를 외치기도 했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부터 자본가들과 부자언론들은 이 법에 대해 온갖 악선동을 퍼부었고, 윤석열이 거부권을 행사하자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세상을 굴러가게 만드는 ‘진짜 주인’은 노동자들이다. 그런데 ‘가짜 주인’인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노예처럼 부리면서 아무 권한도 주지 않고 독재를 행사하고 있다!
이번 거부권 행사는 또한 국회를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개선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도 보여줬다. 국회에서 자본가를 위한 법은 거의 만장일치로 재빠르게 통과시키지만, 노동자에게 약간이라도 유리한 법은 오랫동안 먼지 속에 파묻어 뒀다가 노동자들의 투쟁압력이 거세면 검토하는 척하고 아주 가끔 통과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국회를 통과해도 ‘자본가계급의 정치 하수인’인 대통령이 순식간에 거부할 수 있다. 국회는 노동자를 두들겨 팰 몽둥이를 자본가들에게 주는 자본가계급 정치인들의 소굴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겐 아무것도 주지 못하는 잡담가게일 뿐이다.
개량은 혁명의 부산물
‘개량은 혁명의 부산물’이라는 세계 노동운동의 유명한 격언이 있다. 가진 자들의 세상을 강하게 위협할 만큼 대중이 혁명적 투쟁에 떨쳐 일어설 때 노동자의 처지를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의회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고, 오직 노동자들의 단결투쟁을 통해서만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이 점을 고려할 때, 노동자를 효과적으로 다스릴 파트너로 지배자들한테 인정받고 싶어 경사노위를 계속 들락거리는 한국노총 지도부를 조금도 신뢰해선 안 된다. 또한 국회에 들어가기만을 바라며 가진 자들의 또 다른 정당인 민주당에 의존하려 하는 개량주의 정당들이나 노동자들의 운동을 ‘국회 압력용’으로만 한정하는 민주노총 지도부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집단적 힘만 믿어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가 인간답게 사는 걸 끝없이 거부하는 윤석열 정부는 물론 자본가 세상도 노동자의 힘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철도 현장신문 <노동자투쟁> 1면 사설, 2023년 12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