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파업이 두 달가량 이어지면서 환자들의 생명이 곳곳에서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대형병원들이 노동자들을 무급휴가로 내몰더니, 이제는 서울아산병원처럼 희망퇴직을 밀어붙이는 경우도 있다.
명분 없는 의사파업
이렇게 환자의 생명과 병원노동자의 생계를 위태롭게 하면서 의사들이 파업하는 것은 과연 명분이 있는가? 조금도 없다! 의대 증원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병원에 갈 때마다 누구나 느끼듯, 한국의 진료시간은 매우 짧다. 1차 의료 기준으로, 프랑스는 22분이지만 한국은 고작 4분이다. 무엇보다도 의사 수가 매우 적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랑스는 영국과 마찬가지로 한국보다 공공의료 비중이 훨씬 높아 의사들이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기에, 환자들을 찬찬히 살피며 대화하고 진료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의사 수는 인구 1천 명당 2.6명인데, 이를 오스트리아(5.4명)나 독일(4.5명)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OECD 평균 수준(3.7명)으로라도 늘리려면, 의사를 대폭 늘려야 한다. 전공의들이 주 80시간이라는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대폭 증원이 필요하다. 실제로, 프랑스에선 의사들이 의료인력 확대를 요구하며 종종 파업한다.
병원자본가들의 돈벌이 중시하는 윤석열 정부
윤석열 정부는 총선에서 표를 얻으려고 의대증원 2,000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의사파업을 촉발시켰다. 그런데 윤 정부의 의대증원은 2028년까지 수도권에 빅5 병원의 분원이 설립되는데(6,600병상 증설), 여기에 필요한 의사인력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방의대 중심으로 2,000명을 늘린다고 해도 그들은 대부분 수도권 병원으로 몰릴 것이다.
의사파업에 따른 의료공백을 구실로 비대면 진료를 전면 허용하고, 담화에서 “앞으로 의료 시장이 엄청나게 커질 것” 운운하는 윤석열 정부의 의대증원 진짜 목적은 의료민영화에 있다.
지방에 공공병원을 늘리고 공공의대를 지어 그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하는 공공의료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절실하다. 하지만 윤석열은 담화에서 지방의료원에서 의사를 구하기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공공의료에 대해선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물론 영국, 프랑스식 공공의료가 궁극적 대안은 아니다. 거기에서도 자본가 정부가 이윤 논리를 앞세워 의료인력을 줄여, 환자가 의사 진료를 받으려면 너무 오래 대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자들이 의료를 통제해, 이윤보다 생명을 중시하는 공공의료 정책을 일관되게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윤석열은 담화에서 의사 파업과 화물연대 파업을 동일시하며, 화물연대 파업을 강경하게 진압했던 것을 자화자찬했다. 어처구니가 없다. 의사 파업은 아무 명분도 없는 파업이지만, 화물연대 파업은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매우 정당한 파업이었다.
훨씬 더 정의롭고 강력한 노동자들
정부가 강공을 펼쳐 왔는데도 의사들이 장기간 파업해온 건 무엇보다도 다른 이들이 그들을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윤석열 정부도 최근 “2,000명은 절대적 수치가 아니다” 운운하며 한 발 물러섰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은 어떤가? 자동차와 배를 만들고, 기차와 지하철을 운행하며, 아이들과 환자들을 돌보는 등 이 사회 전반을 굴러가게 하는 노동자들이 파업한다면 과연 누가 대체할 수 있겠는가? 수백만 노동자가 멈추면 사회가 완전히 멈출 것이다. 이 사회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가 훤히 드러날 것이다. 노동자들은 의사들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강력하다는 점이 세 살 꼬마의 눈에도 분명해질 것이다.
물가 뛰었으니 임금 대폭 올려라, 인력을 확충해 노동강도를 낮추자,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3권 보장하라 등은 매우 정당한 요구다. 이런 정당한 요구를 내걸고 굳센 의지로 뭉친다면, 지금 의사파업 앞에서 정부가 당혹스러워하는 것보다 자본가들과 정부는 훨씬 더 쩔쩔맬 것이다. 자신들의 힘을 자각하고 일어선 거대한 노동자들을 꺾을 수 있는 세력은 없다.
격주간 철도 현장신문 <노동자투쟁> 1면 사설, 2024년 4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