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무서워요.” 딥페이크(AI 기반 이미지 합성) 성범죄 때문에 수많은 여성 연예인, 기자, 직원, 군인, 학생이 두려워하고 있다. 이 범죄 피의자의 75%가 10대였다. 남성 군인들이 동료 여군을 ‘군수품’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인하대 여학생들의 딥페이크 합성물을 공유한 텔레그램방의 참가자가 1,200명이나 됐다. 불법합성물 제작 텔레그램 방에 전 세계에서 22만 명이나 참가했다고 한다.
“정부도 공범”
9월 6일, 여성단체들이 종로 보신각 앞에서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 집회를 열었다. 9월 21일엔 혜화역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이런 집회·시위에선 정부도 공범이라고 비판한다. 윤석열 정부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했다. 정부 통계로도 여성 노동자 임금은 남성 노동자 임금의 71% 정도밖에 안 되며,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여성(45.5%)이 남성(29.8%)보다 훨씬 높은데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망언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윤석열 정부는 여성 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예산을 142억 원이나 감축했다. 그런데 성폭력 범죄는 2015년 3만560건에서 2022년 4만515건으로 32.6%나 증가해 왔다. 정부는 점점 더 많은 여성이 성폭력 범죄로 고통받는 현실을 철저히 외면한 것이다.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전문 TF가 11차례나 권고안을 발표했지만, 민주당이 다수인 국회도 방치해왔다. 지금 여야가 수십 개의 대책 법안을 쏟아내고 있지만 재탕이자 ‘냄비’ 입법이라서 그들을 신뢰할 순 없다.
기술 규제, 처벌 강화가 답일까?
AI가 문제일까? AI를 활용한 딥페이크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도 비슷한 범죄가 계속 존재했다. 따라서 AI 기술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기술은 좋은 쪽으로도 쓰일 수 있다. 가령, 일제하 노동운동가들의 사진을 딥페이크 기술로 복원해내 노동자 교육용 자료로 쓸 수 있다. 텔레그램 같은 빅테크 기업이 광고 수익 등 이윤 극대화를 노리고, 딥페이크 성범죄를 방조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하지만 텔레그램을 차단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다른 앱을 성범죄에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벌 강화가 답일까? 급변하는 기술을 이용한 신종 범죄를 처벌할 규정이 없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엄벌주의도 진정한 답은 아니다. 처벌 강화는 처벌을 피하려는 범죄의 지능화, 고도화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딥페이크 성범죄를 계기로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자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다시 나왔다. 그러나 이는 딥페이크 성범죄의 근본원인을 외면한 채, 제대로 목소리 내기 어려운 청소년을 희생시켜 인기를 끌어보자는 속셈일 뿐이다.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으려면?
교육 강화가 답일까? 딥페이크 성범죄에 가담한 학생들 중에는 자기 행위가 범죄라는 점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놀이쯤으로 여긴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권 교육, 성평등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교육을 좀 더 늘린다고 이런 범죄가 사라질까?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영상을 보거나 TV를 켜서 광고를 보면 은밀하게든 노골적으로든 성을 상품화한 장면이 자주 나온다. 여성은 남성보다 임금이 낮고, 비정규직일 가능성이 높으며, 맞벌이 부부여도 집안일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은 어디서나 날마다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이윤 극대화와 무한경쟁 원리로 굴러가는 자본주의 체제에선 ‘더불어 사는 것’은 책 속의 공문구일 뿐이며, 다른 학생을 밟고 올라가는 것이 성공의 표상이다. 구직 청년 10인 중 1인만 대기업·공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에서, 다수 젊은이는 양질의 일자리도, 연애·결혼·출산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미래가 없다.
이처럼 여성억압과 인간소외가 ‘공기’처럼 널리 퍼진 자본주의 사회에선 다른 범죄와 마찬가지로 딥페이크 성범죄를 뿌리 뽑을 수 없다. 성범죄를 뿌리 뽑으려면, 진짜 뿌리인 자본주의 사회를 노동자의 힘으로 바꿔야 한다.
(격주간 철도 현장신문 <노동자투쟁> 1면 사설, 2024년 9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