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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사설
 

병든 사회를 비춘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죽음


  • 2025-02-16
  • 195 회
병든 사회를 비춘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죽음

“경비 주제에, 머슴 주제에 내 말을 안 듣느냐.”

서울 강북구에서 아파트 경비노동자 최희석님이 주차 문제로 입주민한테 폭행당해 코뼈가 부러지고, ‘일을 그만두라’는 협박에 시달리다가 목숨을 끊었다.

나이든 경비노동자에 대한 갑질이나 무시는 꽤 널리 퍼져 있다. [임계장 이야기] 책에서 노인노동의 실태를 고발한 조정진님은 “경비원이 병에 걸리면 업무상 질병이어도 무조건 ‘노환’이니 알아서 그만두라”고 했고, 하루에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이러면 잘라버린다’였다고 했다.

사회적 타살

이런 갑질과 폭행, 편견과 무시는 단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그 뒤에는 뿌리깊은 사회구조적 문제가 있다.

역대 정부는 국민연금이나 기초연금 등 공적연금을 쥐꼬리만큼만 줬다. 대다수 노인은 그것만으론 생계를 도저히 꾸릴 수 없다. 정부가 노인을 내팽개쳐 노인빈곤율이 45% 이상으로 OECD 최고인 한국에서 노인의 다수는 먹고 살기 위해 잠시도 쉬지 못하고 생계전선에 계속 뛰어들어야 한다.

청년들에게도 좁은 문인 대기업과 공기업은 노인들에겐 완전히 닫힌 철벽이다. 노인들에겐 특히 양질의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기에, 안 좋은 경비 일자리라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아파트 현장에선 경비원들을 3개월마다 재계약한다. 주민, 관리소장, 주민대표와 마찰이 생기면 잘릴 수 있어 ‘어지간한 갑질’을 당해도 묵묵히 견뎌야 한다.

악법은 노인노동 착취를 더욱 야만적으로 만들었다. 1998년에 도입된 파견법은 경비 파견을 합법화했다. 그 결과 파견 경비노동자들은 경비업무 외에도 주차관리, 택배관리, 분리수거, 꽃잎·낙엽이나 눈 치우기 등 온갖 일을 해야 하지만 임금을 용역업체에 떼어 먹힌다.

역대 정부는 파견법을 도입·개악하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며, 최저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등 온갖 방법으로 고령노동자의 삶을 망가뜨려 왔다.

기업과 정부의 갑질이 주민의 갑질로 이어졌을 뿐이다. 결국 이번 사망 사고는 이윤만 중시하는 사회와 정부가 만든 사회적 타살이다.

노동자는 하나

노인노동은 남의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가 없었을 때도 대졸자 10명 중 1명만이 대기업 정규직으로 취업할 수 있었다. 청년 대부분이 3D 업종에 취업하거나 비정규직이 된다. 가진 자들의 부동산 투기로 집값이 올라 자녀들이 집을 마련하기 어렵고, 연애·결혼·출산하기도 어렵다. 비싼 사교육비와 높은 대학 등록금은 부모의 허리를 휘게 한다.
 
이런 헬조선에선 자녀 뒷바라지를 오래 할 수밖에 없기에 노후를 제대로 대비할 수 없고, 나이 들어서도 ‘헐값 노동’에 몸을 던져야 한다.

노인노동은 이미 우리 부모의 일이고,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다. 저임금 비정규직 노인노동자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노후를 걱정하는 중년 노동자가 또 얼마나 많은가?

모든 노동자를 위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모든 해고를 금지하며, 넉넉한 임금을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발전을 위해 평생 노력해온 노인들에겐 여생을 즐길 권리도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형식적으로 노인 일자리 개수를 늘리는 데 집중할 뿐인 정부한테는 기대할 게 없다. 노동자의 운명은 노동자 스스로 단결할 때 바꿀 수 있다. 그리고 ‘노동자는 하나’라는 사실을 자각할 때 노동자는 단결할 수 있다.

2020년 5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