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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사설
 

이천 화재 참사 - 누구 잘못인가?


  • 2025-02-16
  • 196 회
이천 화재 참사 - 누구 잘못인가?

“자기야! 안 되겠다...윽”
 신혼 1년차 남성 노동자가 죽음을 당하기 직전 아내에게 남긴 통화내용이다. 숨을 헐떡이던 그 노동자의 전화는 이내 끊어졌다.

수많은 사연들
 
결국 결혼이 꼭 1년째 되는 달에 인생의 동반자를 잃은 아내는 함께 세웠던 계획이 모두 무너져 혼자 남은 삶을 헤쳐 나가야 한다. 한 노동자는 “형님, 불길 때문에 못 나가니 벽 좀 깨주세요!”라고 동료에게 외치다 불길 속에서 죽었다.

50대 아버지와 20대 아들도 함께 일하다가 쓰러졌다. 5살 어린 자녀와 가족에게 생활비를 보내려고 험한 일 마다하지 않았던 중국인 노동자도 목숨을 잃었다. 부모님을 부양하기 위해 막일에 뛰어든 청년도 죽었다.

예견된 참사
 
사고 후 대통령부터 국무총리, 국회의원 및 시장 등 정치인들은 책임자들을 엄벌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나섰다. 노동부는 원청 ㈜건우가 시공 중인 곳을 포함해 전국 물류·냉동 창고 337곳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에 들어간다. 하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격이다.

그들은 이천 물류창고에서 화재가 날 것을 알고 있었다. 노동부가 이미 올해 3월까지 총 6차례 화재위험을 지적했다. 그때 공사를 중단시키고 사장에게 조치를 취하게 했다면 오늘의 참사가 생겼을까? 한번 사고가 나면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은 절대 돌아올 수 없기에 사고를 예방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산재예방에 완전히 무능력했다.

시공사 사장=살인자

보통 창고 내부의 단열재는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우레탄 폼을 잘 사용한다. 문제는 폼 작업 때 생기는 가스(유증기)가 폭발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레탄에 난연재 혹은 불연재를 섞어서 써야 한다. 그러면 불을 붙이려 해도 안 붙는다. 하지만 사장들은 노동자들을 위해선 한 푼도 쓰지 않으려 했다.

그러면서도 일은 아주 빨리 하라고 한다. 단열재 작업을 하면서 엘리베이터 설치 작업을 동시에 하면 안 되는데 억지로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밀어 넣고 공사를 강요했다. 지하에서 엘리베이터 설치를 위한 용접 작업을 하다가 다른 이유로 불이 붙었는데 그 불이 유증기를 만나 폭발적으로 불길이 솟은 것으로 보인다. 불이 붙는 작업과, 불을 붙이는 용접 작업을 동시에 하면 당연히 화재가 날 위험이 증폭한다. 노동부도 아는 걸 사장은 몰랐을까?

심지어 생존자들은 화재 경보음도 울리지 않았고, 피난 유도등도 없었으며, 안전 교육과 안전 관리자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화재 사건이 아니다. 살인사건이다. 사장은 살인자다.

참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여태까지 비슷한 참사는 여러 차례 반복돼 왔다. 하지만 2008년 이천 냉동창고 참사로 40명이 죽었을 때도 사법부는 솜방망이 처벌을 했다. 전국의 건설 노동자들은 이번 참사의 원인이 무엇인지 뻔히 안다. 단지 생계를 위해 다단계 하청 구조 속에서 참고 일했을 뿐이다.

정치권에서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추진한다고 하는데 그게 언제 만들어질지, 효과는 있을지 믿을 수 없다. 사장들이 노동자들의 목숨줄을 쥐고 있다면 그 어떤 법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라는 게 뻔하기 때문이다. 여태껏 법이 없어서 노동자들이 죽은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해고당하지 않고 현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힘이다. 그것이 없다면 어떤 법도 다 소용없다.

2020년 5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