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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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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프랑스 국내 상황


  • 2025-03-05
  • 98 회

{이 글은 프랑스 혁명적노동자조직 LO(노동자투쟁)의 연례대회 문서 중 하나다. 이 조직의 기관지 <계급투쟁> 236호(2023년 12월 ~ 2024년 1월)에 실린 글을 한글로 옮겼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본문에서 [    ] 안에 옮긴이의 짤막한 해설을 담았다.}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가장 진지한 신문들은 3차 대전이 이미 시작되지 않았는지 의문스러워 하고 있지만, 정치인들은 이전투구를 계속하고 있다. 극우, 우파, 여당, 좌파... 모든 정치인이 흥분해 서로를 모욕하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도 주요 야당도 재앙적인 전체 흐름에 대해 믿을 만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


선거와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여론은 대내외 위기의 압박 속에서 극우와 극좌로 이동하고 있다. 정치 지도자 대다수는 이런 위기를 가장 반동적 방식으로 체계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프랑스 영토 안에서 공격이 발생할 때마다 프랑스인들은 충격을 받고, 무슬림과 이민에 대한 두려움과 의심, 그리고 국가에 의지하려는 욕구가 커진다. 3년 전 사무엘 파티가 살해됐을 때도 그랬고[2020년 10월, 중학교 역사 교사였던 사무엘 파티가 수업 때 무하마드 풍자만화를 보여주며 토론한 뒤, 무슬림 난민한테 살해당했다], 이번에 아라스의 한 학교에서 교사가 살해당했을 때도 그랬다.[2023년 10월 13일, 프랑스 동북부 아라스 지역에서 러시아 체첸 공화국 출신의 20대 남성이 학교에서 흉기를 휘둘러 교사 1명(도미니크 베르나르)이 죽었다.] 지난 6월, 낭테르에서 경찰이 젊은 나엘을 총으로 쏴 죽인 사건은 서민 구역 일부 젊은이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 분노는 사흘 밤 동안의 파괴적인 폭동으로 이어졌고 이 젊은이들은 기소됐다.


국제적인 사건들도 똑같이 반동적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스라엘을 무조건 항상 지지했던 프랑스 정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프랑스로 가져와선 안 된다”고 되풀이해서 주장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하마스가 저지른 학살을 바타클랑과 니스 테러의 속편으로 제시하며 ‘우리는 전쟁 중’이라는 확신을 심어준다.[2015년 11월 13일, 파리 바타클랑 콘서트홀에서 테러가 발생해 100여 명이 죽었다. 2016년 7월 14일, 니스에서 프랑스 혁명 기념일 축제를 즐기던 시민들에게 테러리스트가 차량으로 돌진해 86명을 죽였다.] 이 메시지는 10월 13일 아라스에서 발생한 도미니크 베르나르 교사 피살 사건 및 우크라이나 전쟁과 맞물려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사건들은 현재 진행 중인 이민의 비극을 배경으로 벌어지고 있다. 전쟁, 기후 재앙, 전망의 부재 때문에 수백만 남성과 여성이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는 바로 그 순간, 모든 국경이 철통같이 잠기고 있다. 이 남성과 여성들이 유럽의 문을 두드릴 때, 그들은 더 이상 우리가 피난처를 제공해야 할 피해자가 아니라 우리가 피해야 할 위협적 존재로 인식된다.


르펜[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대표]은 이런 ‘요새화된 진지’ 분위기를 가장 먼저 악화시켰다. 르펜은 이주민과 무슬림에 대한 적대감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더 많은 권위, 더 많은 국경, 더 많은 경찰, 더 많은 군대를 요구한다. 이런 견해는 평범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흔해빠져 경쟁자 대부분이 모방하고 있다. 일각에선 벌써부터 르펜이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지 않을까를 걱정하고 있다. 우리의 미래가 중동이나 워싱턴에서 결정될 수 있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르펜이 집권하면 그녀가 거대 부르주아지의 꼭두각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르펜을 이어 오랫동안 국민전선을 이끌고 있는 딸 마린 르펜은 제도와 선거의 틀에 스스로를 맞춰 왔다. 그녀는 이민을 반대할 권리를 주장해 왔다. 그녀가 집권하면 다른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대기업의 관리인이 될 것이다. 그녀는 다르마냉 내무장관을 그 자리에 재임명할 수도 있다. 왜냐면 그녀가 하려고 하는 일이 다르마냉이 지금 하고 있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무솔리니를 존경하는 조르지아 멜로니가 이탈리아 총리로서 지금 하고 있는 일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파시즘은 반동적 문구의 문제만인 것이 아니라 사회 세력의 문제이기도 하기에 "아무나 파시스트가 될 수는 없다"고 우리는 이미 설명했다. 그러나 상황은 갑자기 바뀔 수 있다. 지금 마린 르펜을 따르고 있는 사람들이 아버지 르펜의 파시스트 꿈으로 빠르게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국민전선은 국민 통합 정부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네타냐후는 그의 주요 라이벌인 베니 간츠와 함께 전쟁 내각을 구성했다. 프랑스에서도 공격이나 새로운 위협이 있을 때마다 국민전선에서부터 공산당, 녹색당, 사회당에 이르기까지 통합 요구가 정기적으로 반복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런 통합 정부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유권자의 불신과 변동성을 고려해, 선거 계산을 점점 더 복잡하게 하기에 정치적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일부 공화당원은 만 64세 정년퇴직 법안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기로 결정했다. 멜랑숑을 고립시키기 위해 사회당, 녹색당, 공산당은 하마스에 대한 안일함과 반유대주의라는 이유로 비난받는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멜랑숑이 이끄는 당)에 대해 늑대처럼 울부짖고 있다. 르몽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국민전선을 탈악마화하고 ‘굴복하지않는프랑스’를 악마화하는 ‘악의 역전’을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다.


좌파에서, 오랫동안 '악의 화신'으로 여겨져 온 유일한 정치 세력은 공산당이었다. 스탈린이 1930년대부터 소련을 제국주의 질서에 통합하려 했고, 공산당을 처음에는 인민전선 정책으로, 그다음에는 레지스탕스 쪽으로 밀어붙였지만, 부르주아지는 공산당을 오랫동안 부르주아 정치 체제의 이단아처럼 여겨 불신했다.


부르주아지는 공산당이 소련 관료제와 연결돼 있다는 점, 무엇보다도 노동 현장과 노동자계급 지구에서 공산당이 엄연히 존재하고 그 투사들이 헌신적이라는 점 때문에 공산당에 대해 못마땅해 했다. 공산당의 힘은 국회에서 고함을 쳐서 얻은 게 아니었다. 러시아 혁명이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불러일으킨 열정을 공산당은 물려받았다.


그런데 공산당은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배반하면서 이 유산을 낭비했다. 정치 게임에서 다른 정당처럼 인정받기 위해선 부르주아 질서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는 것만으론 부족했다. 노동자 계급에 대한 신뢰를 잃어야 했고, 부르주아지의 눈에 불쾌감을 주지 말아야 했다. 오늘날 정치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공산당 사무총장 파비앙 루셀은 순응주의, 국가 질서, 경찰, 군대 편을 들어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좋아한다.


사상가 멜랑숑[사회당에서 분리해 나온 개량주의 정치인]에 따르면 오늘날 존재하는 것은 소수 독재자에 맞선 시민들의 투쟁뿐이다. 그래서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는 공산당이 노동자계급 속에 남긴 공백을 메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혁명, 마르크스, 계급투쟁을 주장하지 않는다. 현재 ‘굴복하지않는프랑스’가 배척당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 조직이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위협이 되기 때문이 아니다. ‘굴복하지않는프랑스’는 국민전선보다 노동자계급 속에 영향력이 더 많다고 주장할 수도 없다. 그 조직은 논쟁하고 선동하기 좋아하는 모든 사람에게 일종의 동네북과 같다.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는 제도권 정치에 이미 완전히 통합됐다. 그런데도 언론이 그 조직을 ‘이슬람 좌파’니, ‘스파이’니 하면서 악마화하는 것은 정부와 국가가 전 국민을 일사불란하게 이끌고자 할 때 어떻게 반대파를 찍어 누를 수 있는지를 시사해 준다.


올해[2023년], 정년을 64세로 높이는 것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수차례에 걸쳐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노동계는 단결해서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노동자계급이 함께했다. 그러나 이 운동은 트로츠키가 말한 것처럼 ‘노동자계급 내 자본가계급 대리인’인 노총들의 통제 아래 이뤄졌다. 그리고 사회 질서에 대해 가장 "책임감 있고 건설적"이라고 주장하는 민주노동동맹(CFDT)[매우 온건한 노총]이 주도하는 노총연대기구가 설정한 틀을 넘어설 준비가 된 노동자들이 없었다. 대규모의 단호한 파업이 없었기에 노동운동 투사들이 등장하고 파업위원회가 구성될 가능성은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는 선동과 개입을 위한 지침으로 트로츠키의 이행강령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강령은 2차 대전을 향해 치닫던 위기 상황인 1938년에 작성됐다. 당시 상황은 여러모로 지금과 비슷하다. 하지만 주요 사건은 결코 동일하게 반복되지 않는다. 사건들은 서로 다른 조합과 다른 속도로 전개된다. 이행강령은 우리가 그냥 따라가면 되는 설계도를 제시하지 않는다. 3년 전만 해도 인플레이션이 사실상 없었기에 물가임금연동제 요구는 추상적일 뿐이었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선전이 실업과 일자리 나누기에 초점을 맞췄다. 사태가 한순간에 발생해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울 수 있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관심사를 알고, 거기에 정치적으로 대응하려면 노동자 계급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그들과 함께하려고 계속 분투해야 한다.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혁명조직을 건설하기 위한 자신의 관점을 이렇게 얘기했다. “항구적인 부대를 모으고, 조직하며, 동원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그는 이 작업이 "광범위하고 다양한 정치선동, 즉 대중의 자생적 파괴력과 혁명가 조직의 의식적 파괴력을 정확하게 통합하고 융합하는 작업에 전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한" 조직을 대중으로부터 분리시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사회민주주의 투쟁 조직이 필수불가결한 유연성, 즉 매우 다양하고 급변하는 투쟁 조건에 즉시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 당 조직을 건설할 때 폭발과 거리 투쟁에만 의존하거나 ‘모호하고 일상적인 투쟁의 점진적인 전개’에만 의존한다면 매우 큰 잘못이 될 것이다. 폭발적 시기와 평온한 시기가 어떻게 교대할지를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우리의 일상활동을 전개하면서 모든 것에 대비해야 한다. … 혁명을 단 한 번의 행동으로 상상해선 안 된다. 혁명은 어느 정도 심오한 평온의 단계와 번갈아 가며 일어나는, 다소 격렬한 폭발의 급속한 연쇄가 될 것이다.”


우리 계급은 노동자계급이다. 노동자와 사회 전체가 겪고 있는 물질적, 정치적 퇴보를 마르크스주의의 실패로 여겨선 안 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우리 시대, 부르주아지 시대의 특징은 계급 적대를 단순화했다는 점이다. 단지 새로운 계급, 새로운 억압 조건, 새로운 형태의 투쟁이 과거의 것을 대체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진화는 멈추지 않았다. 노동자계급은 마르크스와 엥겔스 시대보다 수적으로 훨씬 더 강력해졌다.


자본주의 세계화에 편입된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의 최빈국들은 새로운 농민 대대를 노동자로 만들고 있다. 이 노동자들은 진화해 가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노동자들에 추가되고 있다.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 오래된 노동자 요새가 사라져온 반면, 서비스 부문 등에서 새로운 요새가 나타나고 있다. 어떤 패배와 퇴보를 겪더라도, 노동자계급은 여전히 사회에서 유일한 혁명 세력이다. 대자본가들의 권력을 타도하려는 피착취자들의 정치적 각성이 지배 계급에 대한 주요 위협이 될 것이다. 거대한 혁명 물결이 보여줬듯이, 그런 정치적 각성은 세계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


트로츠키는 1938년 이행강령에서 "인류의 위기는 노동자계급 혁명 지도력의 위기로 귀결된다"고 썼다. 이런 지도력 위기는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의 배신과 함께 상층에서 시작됐다. 이는 점점 더 많은 투사를 낙담시켜 활동과 조직에서 멀어지게 만들었고, 노동자들에게 확산돼 그들이 객관적으로 사회 계급을 구성한다는 의식이 약해졌다. 계급적 정치의식이 희미해졌다.


노동자계급 속에서 탈출구를 찾을 수 있거나 아니면 실패하는 것, 이렇게 둘 중 하나일 것이므로, 국제 노동자계급을 기반으로 모든 것을 재건해야 한다. 이런 관점을 사수할 투사들이 있다면, 미래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통해 진정한 혁명적 노동자당을 부활시킬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투지가 솟구치고, 노동자들이 자기 힘을 새롭게 확신할 때만 계급투쟁과 혁명정당 건설에 헌신할 준비가 된 투사 수천 명이 현장과 노동계급 지구에서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2023년 10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