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공녀 강주룡>은 1931년 평양 을밀대에서 한국 노동운동사 최초의 고공농성을 벌였던 여성 노동운동가 강주룡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체공녀(滯空女)’란 ‘고공에 체류하는 여성’이란 뜻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식민지 조선의 가장 밑바닥에서 살아가던 한 여성이 노동자 계급의 투사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치열하게 보여준다.
여성에게 자기 삶을 선택할 권리가 거의 없던 시대에서도, 강주룡은 현실에 순응하지 않앗다. 독립군인 남편을 따라나서고,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도 강요된 혼사에 저항하며 홀로 평양으로 가서 취업했다. 평양 고무공장에서 반장은 여직공들에게 폭행과 욕설, 성희롱을 일삼았다. 여성 노동자들은 공장에선 값싼 노동력으로, 가정에선 출산과 돌봄의 도구로 여러 억압을 겪는다. 이 작품은 식민지 자본주의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이중삼중으로 짓밟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강주룡은 노조 활동을 통해 자신의 고통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착취의 결과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노동하는 모두가 동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는 투쟁의 선두에 선다. “여직공도 다 같은 사람”이라는 그의 외침은 평생 사람 취급받지 못했던 한 여성 노동자의 인간 선언이기도 하다.
실제 1930년 평양 고무공장 노동자들은 임금삭감에 맞서 11개 공장 1,800여 명이 참여한 총파업에 나섰고, 사용자들과 경찰은 단체교섭 대신 대체인력 투입과 폭력, 노조 간부 구속 등으로 대응했다. 소설은 이 과정에서 경찰이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보다 자본의 질서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최근 화물연대 파업 당시 CU 자본과 폭력경찰의 합동 공격에 맞서는 과정에서 한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강주룡은 이런 구조에서도 “연좌합시다”라고 외치며 가장 앞에 선다.
이후 강주룡은 단순한 노조 활동가를 넘어 적색노조 운동가로 성장한다. 그는 노동조합이 단순히 임금인상을 위해서만 싸워선 안 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도 싸워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동료들을 조직해 나간다.
다만 작품 속 고공농성과 단식투쟁은 한편으로 당시 노동운동의 한계도 생각하게 만든다. 강주룡이 그런 투쟁방식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조직력이 충분하지 못했고 탄압이 매우 거셌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 해방은 결국 한 개인의 영웅적 희생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집단적 조직과 연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투쟁은 쉽게 고립되고 개인의 희생으로 끝날 위험이 크다. 그렇기에 <체공녀 강주룡>은 노동자 해방이 결국 집단적 조직과 투쟁 속에서 가능하다는 점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월간 정치신문 <노동자투쟁>(서울) 78호(5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