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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문화
 

서평 <파치>


  • 2026-02-07
  • 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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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시히비정규직지회의 9년간 복직투쟁에 결합하며 연대한 작가의 생생한 투쟁기다. 아사히글라스는 구미에 있는 공장으로 주로 디스플레이용 유리 기판을 제작한다. 여기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은 공간에서 유기적으로 연관된 노동을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아사히글라스가 아닌 파견업체에 소속돼 있었지만 업무지시나 관리를 아시히글라스 사측에서 했기에 기나긴 법정투쟁 끝에 정규직화 판결을 받아낼 수 있었다.


아사히 비정규직은 사측의 비인간적인 처우, 일은 정규직과 비슷하지만 임금은 반도 안 되는 현실에 저항해 노조를 만들었지만 파견업체로부터 문자해고를 당하고 만다. 


그 이후 약 9년 동안 이들은 아사히글라스 사측은 물론이고, 노동자를 외면하는 노동부, 수사와 기소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검사, 사측의 시간 끌기에 호응하는 법원 판사들, 자본의 하수인 역할을 자처하는 구미시의 공무원, 경찰과 싸워야 했다.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국가는 계급 대립이 화해할 수 없을 때,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라고 말했다.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은 한국에서 그 모습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잘 보여주는 구체적인 예시로 가득 차 있다.


현장에도 들어갈 수 없는 해고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투쟁 방식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이 노동자들이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왔을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자기 사업장에 갇히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전국의 투쟁 사업장으로 자기 활동범위를 넓혔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이 개인적이거나 특수한 일이 아님을 깨닫고, 자신들과 같은 처지의 노동자들이 많다는 것도 알았다. 게다가 일본 기업에 맞선 그들의 투쟁은 국가를 초월한 연대로 이어졌다. 이 과정은 ‘국적을 떠나 노동자는 하나’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둘째는 노동자민주주의의 실천이다. 아사히 지회엔 권위적이고, 관료적인 위원장이나 지도부가 없었다. 중요한 결정은 조합원 전원이 모여 토론을 통해 결정하는 구조를 끝까지 사수했다. 그래서 이들은 사측의 회유와 국가기관의 탄압을 견딜 수 있었다. 


‘파치’란 깨어지거나 흠이 나서 못 쓰게 된 물건을 뜻한다. 아사히 노동자들은 쓰다 버려지는 물건이길 거부했다. 그들은 소수 노동자에게도 큰 잠재력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많은 노동자가 이런 잠재력을 깨닫는다면, 낡디낡고 썩어빠진 자본주의가 ‘파치’처럼 역사의 쓰레기통에 던져질 것이다.


월간 정치신문 <노동자투쟁>(서울) 74호, 2026년 1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