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우주에서 눈을 뜬 주인공 '미키'. 그가 전 재산을 털어 마카롱 가게를 차렸지만 남은 건 사채 빚뿐이다. 빚에 시달리던 그의 눈에 들어온 우주 원정대. 식민주의는 이제 우주로 뻗어나갔다.
별다른 기술도 없는 그는 궁여지책으로 우주에 바로 갈 수 있다는 '익스펜더블'(소모품)에 지원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생명공학 발전으로 인체 재생이 가능해진 점을 이용한 직군이란다. 위험한 일에 투입하고, 죽으면 몸을 다시 찍어내 새로운 임무를 부여한다. 그런 과정이 무한히 반복된다. 말 그대로 ‘죽음 노동자’다. 육신의 무한한 복제가 가능해질 때, 자본은 생명마저도 착취의 새로운 대상으로 삼았다. 원정대의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그는 '2등 시민'이다. 그에겐 잊을 만하면 이런 질문이 던져진다. “죽는 건 어떤 느낌이야?”
처음엔 낯설었지만, 미키에게 죽음은 이내 일상이 되고 만다. 그런데 여느 날과 다름없이 죽음을 기다리던 17번째 미키인 '미키17'이,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는 데에 성공해 버렸다. 하지만 돌아간 방에서 그를 기다린 건 다름 아닌 '미키18'. 미키의 생존을 예측하지 못한 상부의 결정이 낳은 일. 하지만 이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 모두 '소각'한다는 방침이 존재하기에, 두 미키는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영화는 인간의 생명을 소모품으로 삼는 모습을 통해, 통제받지 않는 자본과 권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현실의 여러 극우 정치인을 연상케 하는 캐릭터 역시 등장한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는 우주라는 배경을 빌려 지상의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착취당하는 우리는 과연 어찌 살아가고 있냐고.
그 형태는 다르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이미 목숨을 담보 잡힌 채 살아가고 있다. 조선소 노동자는 뜨거운 여름철에 환기조차 안 되는 공간에서 용접하고, 반도체 노동자는 발암물질에 노출된 채 라인을 돌린다. 자본은 얇은 월급봉투를 손에 쥐어주며, 착취를 통해 뽑아낸 두툼한 이윤을 자기 주머니에 챙겨 넣는다. 개별 노동자의 처우가 약간 나아진다 해도, 본질인 노동착취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우린 어찌 답할 수 있을까. 확실한 건 그 착취를 끝내기 위해선,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계급적 단결과 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월간 정치신문 <노동자투쟁>(서울) 64호, 2025년 3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