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주인공 '엄마'. 시간 강사인 그의 딸은, 월세방 보증금이 올랐다며 방을 빼고 애인과 함께 집으로 들어온다. 문제는 그가 여성이라는 것. 하지만 딸이 애인 몫의 보증금까지 모두 까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엄마는 불편한 동거를 받아들인다. 설상가상, 딸은 성 지향을 이유로 해직당한 동료의 복직 투쟁까지 주도하고 있단다.
요양원에서 돌보는 치매 환자 '제희'는 이런 엄마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제희는 과거 흔치 않던 독신 ‘인텔리 여성'으로, 복지 재단의 이사장까지 되어 성공적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잃어가는 기억과 같이, 그 모두는 모래처럼 쓸려나갔다. 치매 증세가 심해지자, 요양원은 그를 기초생활수급자 노인들이 모인 다인실로 옮기려 한다. 주위에선 애써 위로하지만 엄마는 알고 있다. 그곳은 연고 없는 노인들이 침대에 묶여 죽을 날만 기다리는 공간이라는 걸.
제희를 두고 엄마는 자신과 딸의 미래를 고민한다. 좋든 싫든 뒤를 봐줄 가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딸에게 '소꼽놀이'를 멈추고, 이제라도 좋은 남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라 부탁하지만 딸은 완강하다. 사실 엄마도 알고 있다. 딸은 그 누구보다 깊이 생각하고 결정했다는 걸. 하지만 엄마는 또 알고 있다. 세상은 딸의 생각과 관계없이 흘러간다는 걸.
정체성, 질병, 그리고 모든 소외와 차별 앞에서 우리는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된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당연한 일이다. 노동자들은 이윤을 창출해야 할 부품에 불과하고, ‘정상가족’을 꾸려 대를 이어 착취당할 아이를 낳고 기르길 요구받는다. 그 ‘정상성’의 거부는 생존권의 거부와도 같다.
그 모든 모순을 해결하려면 이 세상을 바꿔야 한다. 허울 좋은 '인식 전환'이 아닌 체제 전환이 필요하다. 즉 모순의 근원인 자본주의 체제를 철폐해야 한다. 그것을 쟁취할 수 있는 힘은 노동자 계급의 단결뿐이다.
월간 정치신문 <노동자투쟁>(서울) 58호 2024년 9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