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오사카 이쿠노구. 일제강점기에 고향을 떠나온 조선인들이 모여 살던 이곳엔, 지금도 코리아타운을 중심으로 여러 재일교포가 생활하고 있다. 이곳에는 특별한 음식도 하나 존재한다. 곱창이다. 현재는 일본 전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대중적인 음식이지만, 처음에 곱창은 먹을 것이 없어 정육점에서 버린 내장을 조선인들이 요리해 먹었던 것이었다. 곱창 요리를 일컫는 단어인 ‘호루몬’의 어원이, ‘버려지는 것들’이라는 건 많은 점을 보여준다.
영화는 이 호루몬을 통해 조선인 여공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산업화 흐름 속에서 신흥 공업도시 오사카에 건설된 방적공장은, 값싼 인력의 수급을 위해 조선으로 눈을 돌렸다. 몇 년만 일하면 목돈을 만질 수 있다는 말에 어린 조선인 여성들이 바다를 건너왔지만, 기다리던 것은 열악한 노동 환경과 턱없이 부족한 식사, 그리고 낮은 임금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좌절치 않고 꿋꿋이 살아냈다. 함께 정육점에 찾아가 얻어 온 내장을 요리해 주린 배를 채우고, 야학을 열어 글을 배웠다. 단결했고, 사측의 부당행위에 맞선 대규모 노동 쟁의까지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싸웠다.
이런 흐름 속에서 공장은 단순한 민족적 억압의 공간이 아니었다. 같은 민족인데도 구사대 노릇을 하며 폭력과 학대를 일삼은 관변 조선인 노동단체 ‘상애회’가 있었고, 쟁의의 촉발이 일본인 중년 노동자의 해고였다는 사실은, 피식민 노동자 계급에게 제국주의가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보여준다. 민족의 논리에 앞서, 자본의 논리가 제국주의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런 제국주의에 제대로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바로 현장에 직접 몸담은 노동자 계급이다.
노동운동의 전망이 사라졌다고들 한다. 노동자들은 자본에 잠식당했고, 저항의 불씨는 꺼졌다는 거다. 하지만 엄혹한 시절에 빨간 댕기를 머리에 꽂고 당차게 싸운 여공들의 모습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자본의 세계화 속에서 노동자 계급도 국가를 옮겨 다니며 일거리를 구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국적을 넘어 다시 꾸려내는 노동자 계급의 강력한 단결이다.
월간 정치신문 <노동자투쟁>(서울) 57호, 2024년 8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