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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문화
 

[영화평]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 2025-03-05
  • 1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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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회사 사무직 정은. 그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1년간 지방의 하청업체로 파견된다. 하지만 송전탑을 오르내리는 그곳에 사무직 노동자의 자리는 없었고, 간신히 얻어낸 책상은 구석에 파티션으로 분리된 채 존재한다. 정은은 소장 한 명과 수리공 셋으로 구성된 사무실의 체계를 잡기 위해 노력하지만 노동자들의 반응도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근무복마저 자기 돈으로 사야 하는 열악한 환경의 그들에게, 정은은 그저 '원청 공채'라는 타자일 뿐이었다. 


설상가상, 원청은 정은의 임금마저 하청이 부담하라고 통보한다. 인사고과에 따라 한 사람은 사무실을 떠나야 한다. 소장은 정은에게 하위 고과를 주어 쫓아내려 한다. 본사에서 찾아온 동기 역시 그의 상태가 위험하다고 전하며, 반드시 살아남아 본사로 돌아오라고 말한다. 그러던 중, 현장에 일손이 모자란 일이 생긴다. 정은은 결심한다. 직접 송전탑에 오르기로. 


하지만 책만 보던 그가 처음부터 현장 노동에 능숙할 리가 없다. 함께 일하게 된, '막내'라 불리는 노동자 충식 역시 그에게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는다. 서서히 쌓인 갈등이 폭발하는데, 막내는 정은에게 말한다. “우리한테 무서운 건, 사고가 아니라 해고예요.”


그러나 정은 역시 해고의 문턱 앞에 있는 상황. 더구나 앞서 사측에 '찍혀' 회사를 나간 선배의 소식을 들으며, 극도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정은 역시 자기 심경을 쏟아내고, 이후 막내는 정은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영화는 노동자의 집단적 투쟁을 내세우진 않는다. 하지만, 사측의 해고 위협 속에서도 한 인간이 자리를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연대 역시 싹튼다. 이것은 단순히 자기 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해고라는 인격 말살 시도에 맞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는 투쟁이다.


월간 정치신문 <노동자투쟁>(서울) 54호, 2024년 5월 30일